“다리오 왕 제이년”으로 시작하는 스가랴는 구약의 마지막에서 두번째 되는 책이다. 구약에서 ‘아무개왕 몇년’이라고 기록한 부분이 꽤 있는데 성경의 기록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다리오 왕 제이년’이라는 부분이 ‘서기’라는 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올해가 서기 2016년인데, 이 ‘서기’는 라틴어로 A.D. 즉 ‘Anno Domini’라는 뜻으로 ‘주님의 해 in the year of the Lord’ 즉 ‘주후’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왕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고대에 ‘아무개왕 몇년’은 길어야 몇 십년이지만, 왕이신 주님의 해는 벌써 2016년째가 된다. 요즘은 BC나 AD를 BCE ADE 등으로 써서 굳이 ‘그리스도’나 ‘주’라는 말을 삭제해 버림으로 ‘보편력’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 원래 의미가 ‘주후’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왕이시다!
스가랴에게 임하신 여호와의 말씀은 처음부터 ‘돌이키라’이다. ‘돌아오라’고 번역됐지만 원래 의미는 단지 ‘돌이키다 turn’이다.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는다. 단지 우리의 마음이 멀리 떠난 것이다. 얼굴만 돌이켜도 주님을 만날 수 있다. 돌이킬 때 그의 영광을 볼 수 있고, 얼굴만 돌이켜도 그의 영광은 우리 몸 전체를 돌이키게 한다.
15절에는 ‘안일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주님께서 백성의 죄악에 ‘심히 진노’하셨던 적이 많았지만, 오늘 말씀은 그 ‘심히 진노하심’이 사실은 ‘조금 노하였’던 것임을 밝히신다. 아… 마치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당신의 백성을 향하신 주님의 사랑이다. 백성은 주님을 떠나 그 얼굴을 돌이켰지만, 단지 돌이키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그의 은혜를 베푸신다.
그 은혜는 16-17절의 성전 재건의 말씀과 성읍 부흥의 약속이다. 구약의 중심은 성전인데 그 성전의 재건을 선포하신다. 그러고 보면 주님의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끔찍한 선언이었겠다. 벌써 몇 차례 역사를 통해 성전 파괴를 경험한 이스라엘은 그러한 사건은 하나님의 심판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끔찍한 고난을 의미했기 때문에 주님의 성전에 대한 예언 즉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마 24:2)는 말씀은 유대인들이 이를 갈게 할 선포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있고, 성령이 내주하시는 모든 믿는 이들이 주님의 성전이 된다.
아무튼 이러한 성전 재건과 성읍 부흥을 위해서는 주변 강대국을 심판하셔야 하는데, 이러한 강대국들은 ‘네 개의 뿔들’로 묘사된다. 뿔은 강하고 보기에 두렵다. 뿔은 권력과 힘을 상징한다. 나의 삶에도 나에게 두려움을 주는 여러 가지 뿔들이 있다. 그런데 그러한 뿔들을 꺽는 ‘천적’도 있는데 바로 대장장이다. 와우.. 뿔들이 아무리 드세도 대장장이 앞에서는 기를 못편다. 네 개의 뿔들에 대해 네 명의 대장장이를 예비하셨다. 오늘 믿는 이들의 삶 속에도 이러한 대장장이들이 준비되었기를!
오늘 말씀이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본다. 보통 큐티를 할 때 ‘적용’이 주된 목적이 되면 진리탐구 면이나 충분한 묵상 등이 부족함을 느끼고, 반대로 진리탐구가 목적이 되면 적용이 상대적으로 약해짐을 본다. 개인적으로는 진리탐구면을 선호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하루를 살다보면 적용이 많이 부족했음을 느낀다. 하지만 진리는 나로 힘을 얻게 하고 안식하게 하고 자유하게 한다. 모든 것은 주님의 섭리와 안배 아래 있다!
주님, 주님 아닌 것을 향해 눈을 돌리면 유혹과 두려움과 복잡함과 추잡함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단지 눈을 돌려 주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이러한 모든 것에서 해방을 주시는 주의 손길, 네 명의 대장장이가 예비 됐음을 봅니다. 오늘 여러 것들에 의해 묶임 당한 주의 백성들을 그 곤란에서 구원하시고 주께로 돌이킬 수 있는 마음 주소서. 우리 안의 여러 악하고 약한 것들을 대항하며 싸우며 이김으로 주의 성령이 충만케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