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사탄’이 등장한다.  ‘사탄’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서 ‘대적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여기에 신약에는 ‘마귀’ 즉 ‘데블’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헬라어 ‘디아블로’에서 온 단어이다.  그래서 ‘마귀’라는 단어는 구약에는 없다.

 

‘대적자’라는 뜻의 사탄은 마치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뜻으로 들리고 사실 많은 면에서 사탄이 하나님을 대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탄 외의 인간 중에도 ‘대적하는’ 이들은 사탄으로 불릴 수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 베드로가 주님의 죽으심을 만류할 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 16:23)’고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마귀라는 뜻이 아니라 주의 뜻을 대적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피조물로서 사탄은 하나님께 맞대고 대적할만한 존재가 될 수 없다.  몇몇 종교적인 그림에서 주님과 사탄이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대항하는 듯한 그림을 그린 것을 보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주님은 이미 사탄을 이기시고 그 머리를 상하게 하셨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는 사탄이 여호와 앞에 서지도 못하고 ‘여호와의 천사 앞에’선 여호수아에 대항해 그 (아마도 여호와의 천사) 오른쪽에 서서 여호수아를 고소하고 있다.  사탄은 여호와 하나님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여호수아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사탄을 책망하신다!  그러시면서 ‘예루살렘을 택’했다고 하신다 (2).  하나님께서는 상대도 되지 않는 사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으시다.  그의 고소에 대해 그를 책망하신다.  ‘사탄’은 세 번 나오지만 ‘여호수아’는 여섯 번 나온다.  사탄은 책망으로 심판하시지만 오히려 더러운 옷을 입고 있던 여호수아에 대해서는 그 옷을 벗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고 정결한 관을 씌우신다.  그의 지위를 회복시키신다.  지위뿐만 아니라 주님의 도와 규례를 행하라는 명을 하심으로 그 삶도 받으시고, 더 나아가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 뿐 아니라 메시야에 대한 약속도 하신다.

 

이러한 약속이 오늘 믿는 이들에게 임했다.  사탄은 끊임없이 인생을 고소하지만, 그의 고소는 마치 총알 없는 총 같다.  그의 고소의 근거인 율법이 그리스도로 인해 도말되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성취하시고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2:13절은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라고 기록한다.  '살리시고'도 그렇지만,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에서 ‘사하시고’의 원어 시제는 아오리스트로 되어있다.  ‘죄를 사하여 주신’이 아니라 ‘죄 사하시는’이다.  즉 주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사건은 한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효능이다.  그래서 죄와 허물이 발견될 때 즉시 주님 앞에 고백할 수 있고 사함 받음으로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이다 ( 8:31).

 

14-15절은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고 기록하는데, 바로 오늘 말씀 사탄을 책망할 근거가 된다.  인생은 주님을 거스려 죄의 종이 되었지만 주님께서 원수가 조소할 근거가 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결과적으로 사탄은 그의 권세가 무력하게 되었다.  마치 총알 없는 (혹은 총집 magazine 없는) 총을 들고 가는 군병처럼 웃음거리가 되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택하시고 사탄을 책망하신다. 할렐루야!

 

주님, 더러운 옷을 입었던 것을 제가 알고 주께서 아시며 사람들과 권세들이 본 것을 압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거룩하시고 온전하신 그리스도를 나의 의복으로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책망과 심판이 나에게서 지났음을 찬양합니다.  주 안에 있을 때 사탄은 나의 발 밑에 있음을 봅니다.  나의 오늘 삶에서 메시야의 모습이 나타나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성품이 열매 맺게 하소서.  나의 어떠함은 십자가에서 죽었고, 주의 높이심과 채우심으로 열매 맺음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