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매우 특이하다. 스가랴가 보는 이상 중에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의 날아다니는 융단과 더불어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상케 하는 에바 상자가 등장한다.

두루마리는 보통 말씀을 의미하는데 이 두루마리가 날아다닌다. 두루마리가 말린 상태에서는 긴 원통같이 생겼지만, 아마도 여기 두루마리는 펼쳐진 상태일 수 있다. 20규빗 길이에 10규빗 너비는 펼쳐진 모양이기 때문이다.

가끔 바닷가에 나가면 비행기 꼬리에 배너를 달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본다. 높이 있기 때문에 멀리서도 잘 보인다. 오늘 말씀은 마치 그런 느낌을 준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루마리가 '저주'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는데, '도둑질 하는 자' '맹세하는 자'에 대한 저주다. 어떻게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께서 저주를 하실 수 있나? 하나님은 저주도 하시고 그러한 면모가 당신의 사랑을 더욱 빛나게 하신다.

죄에 대해 '은혜롭게' 은혜로만 덮으려고 하는 것은 임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죄는 드러내고 자백하고 주님의 빛 비추심 앞에 깨끗함 받아야 하는 문제이지 숨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지난번 벧전 4:8에서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씀했지만, 이 구절은 '뜨겁게 서로 사랑할' 때 허다한 죄를 덮는다. 같은 단어와 구절 즉 '허다한 죄' '덮다'를 사용한 약 5: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고 기록하는데, 여기서는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것이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말씀한다.

아무튼 이 '저주'의 말씀의 목적은 '정결케 함'을 위해서다. '끊어지다'는 말은 '깨끗이하다'와 같은 의미다. 주의 나라를 부흥케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것 즉 도둑질과 헛맹세가 끊어져야 하는데, 살인이나 음행이 아닌 상대적으로 질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죄목을 말씀하신다. 이 이유는 뭘까?

사실 도둑질은 심각한 죄다. 자기의 것 아닌 것을 소유하는 것이 도둑질인데, 세상의 많은 문제가 여기에서 온다. 재벌은 재벌대로 그들의 이익을 위해 모든 것에서 도둑질을 하고 있고, 사람들은 조금만 권력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마귀는 부정한 방법으로 아담을 죄의 노예로 만들었고, 그의 후손들도 세상에 마음을 도둑맞아 정작 날아다니는 저주의 배너를 보지 못한다. 눈을 조금만 돌이켜 올려다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보이지만, 우리의 마음과 시선은 때때로 도둑맞는다.

맹세 역시 큰 문제이다. 나 자신의 연약함과 악하고 그릇됨을 모르고 멋대로 맹세하는 것은 결국 지킬 수 없는 것을 떠벌리는 것이고 이것은 교만에 기인한다. 도둑질과 더불어 맹세하는 것이 없어진다면 그 외의 더 큰 죄악들은 제어될 수 있고 주님의 나라와 교회는 자정 능력을 회복할 것이다. (물론 '자정'이라는 말보다는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겠다.)

주님, 하늘에 떠다니는 비행기 끝 배너를 보는 것 처럼, 오늘 나의 시선을 하늘에 두기 원합니다. 저주의 말씀이라고 그것을 보고 주 앞에 회개하는 이들은 이 저주가 임하지 않고 정결케 됨을 믿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하늘에 두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