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서 여호와의 이름은 다양하게 기록되는데, ‘만군의 여호와’ 라고 기록된 것은 삼상하, 왕상하, 대상, 시편, 그리고 특히 이사야와 예레미야에 매우 많이 나오다가 학개서에 12, 특히 스가랴에만 46, 그리고 후에 말라기에 24번 등장한다.  창세기에는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은 없지만,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이기고 난 후 멜기세덱이 여호와 하나님을 ‘천지의 주재’라고 언급했던 것을 따라 아브라함도 후에 소돔 왕에게 여호와를 ‘천지의 주재’라고 고백한다 ( 14 19, 22).

 

이렇게 계속해서 ‘만군의 여호와’를 언급하신 이유가 뭘까?  창세기 1 1절부터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다’고 기록함으로 하나님께서 만물의 주인이시요 주재이심을 밝힌다.  이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고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시고 죄에서 구원받고 영원히 주님의 왕국과 백성으로 함께 살기를 원하셨는데, 인간의 타락과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웃 나라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하기에 이르신다.  하지만 오늘 말씀 8장은 그 모든 저주와 심판을 거두시고 온전한 회복을 베푸시며 이스라엘 백성 한 명이 이방 백성 백명을 인도할 것이라는 축복의 선언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홀로 천지의 주재시고 만군의 여호와시지만, 사람들 특히 그 택하신 백성들은 그것을 너무도 쉽게 잊었다.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이방 백성들에게 포로로 잡혀가면서 특히 하나님의 만주의 주 만왕의 왕 되심을 의심했을 것이다.  이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참으로 왕 되심을 밝히신다.  만군의 여호와 되심으로 모든 것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특히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 즉 ‘너는 복이 될지라 ( 12:2)’의 언약이 스가랴를 통해 다시 선포 된다 (13).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만군의 여호와’와 더불어 ‘진리’라는 말씀이 따라온다.  특히 예루살렘은 ‘평강의 도시’라는 뜻인데 오늘 말씀 3절에서는 ‘진리의 성읍이라 일’컬을 것이라고 말씀한다.  ‘만군의 여호와’와 ‘진리’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예루살렘의 의미가 평강 평화 화평 등의 뜻이지만, '평화'라는 것은 값없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통해 국가간의 힘의 균형이 깨지면 전쟁이 있었다.  현대에는 핵무기를 위주로 묵언하에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다.  평화주의라는 말은 좋은 말이지만 현실은 아무 힘도 없는 평화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평화의 뒷면에는 ‘진리’가 있고 또 진리는 평화를 유지한다.  공의롭게 진리로 ‘화평한 재판을 베풀 (16)’어야 평화는 이루어 진다.  진리는 ‘명분’이고, ‘정통’이며, ‘진짜’다.  참되신 여호와께서만이 우리의 명분이고 정통이며 진리가 되신다.  믿는 이들이 세상의 무력이나 권력 혹은 아무런 힘도 없이 평화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뒤에 든든한 빽(?) 만군의 여호와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 세상에서는 힘이 없는 평화를 추구할 수 없음을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께서 계시기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며 성령을 주셨기에, 세상의 힘이 아닌 오직 주님으로만 우리의 힘 삼습니다.  이 진리를 바탕으로, 진리되신 그리스도를 섬기며 그 안에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기 원합니다.  또한 형제들과 화평하며 세상에게도 주님 주신 이 평안을 끼치게 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