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에 기병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집트를 정복한 힉소스 족도 처음으로 기병과 병거를 사용했기에 이집트는 속수무책으로 넘어졌다.  훈족과 몽고의 기병은 아시아와 유럽을 정복했고, 중세까지도 기병은 전술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이런 기병에 대해 두 가지 대응책이 있었는데 하나는 궁사와 또 다른 하나는 장창부대였다.

 

장창의 핵심은 기병이 몰려올 때 긴 창의 뒷 부분을 땅에 고정시켰다가 말이 바로 앞에 왔을 때 창의 앞 부분을 일제히 들어올려 말에 타격을 입힘으로 기병의 기동성을 떨어뜨리는 체계였다.  하지만 그 이 전에 궁사들이 먼저 활과 화살로 몰려 오는 기병대의 기선을 흐트러뜨린다.  오늘 말씀 4,5절의 ‘..싸우는 활이.. 말 탄 자들을 부끄럽게 하리라’는 구절이 이러한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6장의 전신갑주를 다루는 부분에서 원수는 ‘화전 (불화살)’을 사용함을 밝힌다.  즉 그냥 화살도 아니고 불 붙인 화살인데, 물건이나 몸에 맞으면 맞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불길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불화살에 대해서는 ‘믿음의 방패’로 그들을 ‘소멸’해야 함을 말씀한다.  원수는 거듭난 성도들의 위치와 그 안의 생명을 알기에 ‘그를 만지지도 못’한다 (요일 5:18).  그래서 당당하게 붙어서 검으로 싸우는 대신 멀리서 불화살을 쏘면서 공격하는 치사한 방법을 쓴다.  우리는 이에 대해 믿음의 방패와 ‘성령의 단검’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해야 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보니 화살이 단지 원수의 전용 무기만은 아니다.  다윗도 골리앗에 대해 검으로 싸운 것이 아니라 물매 즉 화살과 같은 ‘발사체’로 승리했음을 본다.  그래서 근거리 혹은 중거리 접전에서 우리도 화살을 쓸 수 있는데 이는 ‘말 탄 자들을 부끄럽게’한다.  즉 기도로 원수를 제압하는 것이다.  원수를 조롱하는 것이다. 

 

보통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하지만, 성경에 보면 ‘명하는 기도’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기도의 대상이 근본은 하나님이지만 명하는 기도를 할 때는 사물이나 원수에 대해서도 기도할 수 있음을 본다.  여호수아 10:12은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라고 말씀하는데,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지만 그 대상이 ‘태앙아…머무르라 달아…그리할지어다’ 즉 사물을 대상으로 선포하는 것을 본다.  이러한 명하는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재미있는 것은 죄의 헬라어가 ‘하말티아’인데 이 단어는 화살이 빗나감을 의미한다.  즉 목적을 잃은 것을 말하는데, 우리의 바라는 것과 기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슬픈 것 처럼, 우리에게 하나님의 목적하신 것을 이루지 못한 것은 죄가 된다.  하지만 거듭난 우리는 그의 목적하신 바를 이루고, 또 우리에게 있어서 기도는 화살과 같은 발사체 (ballistic) 무기가 된다.  마치 적진을 초토화 시키는 미사일처럼, 기도는 원수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고후 10:4).

 

주님, 기도가 능력이 있는 것은 주의 뜻을 말해냄이기 때문임을 압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오늘 미사일처럼 세계 전역에서 그 위력을 나타내도록 능력을 더하소서.  우리의 이성과 이해를 뛰어넘는 주님의 역사하심이 오늘 내 삶과 주의 교회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태양아 머무르라! 달도 그리할찌어다!  사탄아, 너는 소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