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절에는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라고 기록하는데, 진짜 목동들이나 양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이라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양을 사는 사람이야 양털이나 젖이나 고기를 얻기 위해서 정당하게 돈을 주고 사기 때문에 산 후에 잡든지 더 키우든지 상관이 없고, 팔아서 돈 벌은 사람들 역시 정당한 수입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다.
문제는 목자들이 그 양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한 것 즉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 목동이나 양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목자로 세우신 이들과 그들의 보호와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정말 슬픈 것은 양들에게는 별 잘못이 없지만 (적어도 11장에서는) 이렇게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 목자들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다시는 이 땅 주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들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이 땅을 칠지라도 내가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6절).
13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의 많은 영어 번역에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부분이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만 되어 있지만, 어떤 번역에서는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까지 되어 있다. 12절과의 문맥상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부분은 단지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까지만으로 이해할 수 있고, ‘나를 헤아린 바’에서 ‘나’는 하나님 보다는 스가랴를 가리키는 것이 맞겠지만, 원어에서도 이해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두 가지 모두를 생각한다면 스가랴가 받은 삯은 스가랴의 노동의 대가지만, 이를 받은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도 연관될 수 있다.
스가랴가 얼마 동안 일을 해서 은 삼십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은 삼십은 노예의 값 혹은 별로 많지 않은 가치, 임금으로는 120일 치에 해당하는 돈이다. 원어에서 ‘헤아린 바’의 의미는 ‘대단한, 좋은, 영광스러운’ 등의 뜻인데, 문자적으로는 좋은 뜻이지만 문맥상 은 삼십의 가치에 대해 비웃는, 반어법을 쓰는 듯한 느낌이다. 스가랴 자신도 그렇지만 이 대가가 ‘나를 헤아린 바’ 즉 하나님께 적용되면 하나님을 마치 노예로 취급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스가랴는 그 삯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져 버린다.
마지막 17절이 매우 인상적인데,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아주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하시니라’고 못된 목자를 저주하시는 말씀이다. 흥미롭게도 ‘못된’이라는 단어의 원어가 ‘에알릴 (원형 엘릴)’인데 그 뜻은 ‘쓸모없는, 허무한’ 등의 뜻이지만, 여러 곳에서 ‘우상’으로 번역 되었다. 이 ‘못된 목자’는 쓸모 없게 된 목자인데, 우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양 떼를 버린’ 목자는 그냥 나쁜 목자가 아니고 ‘우상 목자’, 아이돌 목자라고 말씀한다. 잡혀죽을 양, 도살될 양은 소위 말해 ‘지옥’으로 향하는 영혼들일텐데, 이들에 대해서는 가슴 아파하지 않고 자신의 안위와 부와 영광만 지향하는 나쁜 목자들은 그 정체가 ‘우상’들임을 폭로한다.
주님, 목자가 양들에 마음을 다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좇을 때 목자장이신 주님 앞에 쓸모 없게 되고 오히려 대적하는 우상이 되어 버림을 배웁니다. 저에게 맡겨진 것들 혹은 맡겨진 영혼들에 대해 제가 그들 가운데 높아지고 우상되는 것을 포기하게 하시고 나를 더 잃음으로 주님을 더 얻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