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서는 그 이전 고레스 왕의 명령으로 성전 재건이 시작됐지만 중간에 몇 십년 멈추었다가 후에 재건되었고 이제 아닥사스 왕의 허락하에 성벽이 재건되는 배경을 보여준다. 오늘 말씀은 성벽의 재건이 끝나고 이제 마지막으로 문짝만 남겨 둔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문짝만 달게되면 재건이 완료 되기에 원수는 애가 타고 바빠지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정치와 종교를 동원해서 하나님의 사역을 좌절케 하려 한다.
정치와 종교가 하나님 앞에 제대로 서면 큰 복이 되겠지만 역사적으로 그 둘은 작당해서 참된 주의 백성들을 압제했던 예가 수 없이 많다. 초대 교회가 그런 일을 당했고 청교도들이 그랬으며 천주교의 탄압으로 수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했고 그 후에도 셀 수 없는 고난의 예가 있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다. 200여 년 동안 번영을 누려온 미국은 이제 많은 정치적 부분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고 기독교의 간판을 달아 놓은 여러 교파들도 성경과는 무관한 방침을 세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믿는 이들은 성령께 ‘힘을 주소서 (9절)’ 라고 기도하며 의지를 굳게하고 영들을 분별해야 한다.
원수는 쉴 세 없이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만나자고 회유책을 쓰는데, 5절에는 다섯 번이나 계속 만나기를 청하며 없는 말을 지어내기까지 해서 느헤미야를 공격한다. 더우기 소위 선지자라는 이들까지 돈으로 매수해서 성전으로 피할 것을 운운하며 유혹한다. 이에 대해 느헤미야는 강한 의지로 밀어 붙인다. 문짝을 달지 않은 성벽은 완성된 성벽이 아니다. 성벽은 보호와 경계와 지경의 완성을 의미하는데 그 어디라도 뚫린 부분이 있으면 경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고, 문짝을 통해 안과 밖의 교류 및 필터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소위 선지자라고 하는 스마야의 성전으로 피하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 12절에 “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러한 분별력이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필요하다. 참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권유를 할텐데, 스마야는 민수기 여러 곳에서 제사장 외에는 들어오지 못하는 성전으로 들어와 숨을 것을 권했다. 이러한 회피가 쓸데 없는 것임을 제단 뿔을 잡았던 아도니야의 경우나 같은 일을 했던 요압도 죽임을 면치 못했던 것을 느헤미야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개역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로 되어 있지만 원래는 ‘우리가 하나님의 집, 성전 안에서 만나자 그리고 성전의 문들을 걸어 잠그자’로 되어 있다.)
더우기 재건된 당시의 성전이 제대로 그 기능을 했을지 의심스럽다. 성전이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성전의 모든 기물들 특히 성궤가 구비되어야 하고 동시에 그 일을 감당하는 대제사장들과 제사장들이 서야 하는데, 오늘 말씀을 보면 이 두가지 모두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건물이 있더라도 정작 그 건물의 참된 기능을 하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다. 또한 사람들이 있어도 성궤가 없다면 그들의 섬기는 것은 헛된 것이 된다. 지성소에는 반드시 성궤가 있어야 하고 제사의 절정은 지성소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와 같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있지만 그 안에 주님을 만나는 성궤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즉 영 안에서 경배하는 것 (요 4:24)이 없다면 그 어떤 휘황찬란한 교회당도, 그 어떤 열심도 헛된 것이 된다.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던 것 같이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으실까?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경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경배하는 것을 아노니…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 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 안에서 그리고 진리 (참) 안에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
주님, 원수는 권력과 더불어 모호한 종교성을 이용하여 우리로 참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하게 함을 봅니다. 여러 가지 회유책이나 두려움으로 우리를 묶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우리를 해방시키셨고, 영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경배하게 하셨음을 압니다. 어떠한 분위기나 의식이나 느낌이나 감정 등을 떠나 영이신 하나님을 영 안에서 경배함을 배우게 하소서. 과연 무엇이 중요한 것이지 오늘 분별할 수 있는 영이 있기 원합니다. 주를 향한 주의 종들의 의지를 강하게 하소서. 세상의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게 하소서. 주님은 진리, 참 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