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이 특이한 것은 우선 범위가 매우 짧다는 것이다. 생명의 삶을 편집하는 분들은 기도하면서 구절을 나누었을텐데 비교적 짧은 이 부분을 따로 떼어 놓은 것에는 아마도 특별한 이유가 있을 듯 하다. 그런데 그 내용이 '초막절'에 관한 것이다.
초막절은 유월절(무교절), 칠칠절(오순절 맥추절)과 함께 구약의 3대 절기인데, 상대적으로 그 언급이 많지 않다. 구약 전체에 9개 구절 정도만 발견될 정도로 매우 드물다. 레 23:34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고 했듯이 8장 말씀처럼 당시 에스라가 율법책을 낭독했던 일곱째 달에 7일 동안 초막절을 지키라고 명한다. 그러고보니 에스라가 낭독했던 이 '율법책'은 아마도 레위기였나 보다.
유월절은 애굽을 떠날 때를, 즉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보혈을 흘려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심을 상기하게 하고, 그 후 50일이 지난 후에는 칠칠절(오순절) 즉 성령의 부어주심을 보여주며, 마지막으로 우리 나라 추석 정도가 되는 초막절은 특히 광야에서 방황하며 (하지만 동시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초막을 짓고 살았던 때를 기억하게 하는 절기다.
이 초막절이 중요한 것은 느헤미야 당시 이미 성전이 재건되었음에도 과거 성막으로만 방황하던 광야 시대를 기억하게 한 것인데, 바로 광야로 비교되는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좋은 땅'을 바라며 언제든지 철거할 수 있는 초막 혹은 장막을 짓고 생활함으로 현재 이 땅의 삶은 순간에 지나지 않음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지난 스가랴 마지막장 14장에도 초막절이 등장하는데, 16절에는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고 기록했고, 18절에는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고, 특히 19절에는 "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고 말하며 후에는 애굽인들과 이방인들 조차 초막절을 지킬 것을 말씀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의 백성이나 이방인이나 결국에는 이 땅에서의 삶이 마치 초막을 짓는 것과 같은 짧은 인생임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어제 말씀이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리고 그를 누림이 가장 중요한 것을 일깨워 줬지만, 이에 대해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하루를 덧없이 보내는 인생에게 하나님께서는 한번 더 '초막절'에 대해 말씀하시며 인생의 짧고 덧없음을 깨우치게 하신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사모하게 하셨고, 그 영생으로 이 땅에 속한 것에 연연하지 않게 하셨다.
하지만 그렇다고 초막절이 염세주의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7일 동안 '크게 기뻐하 (17절)'고 추수한 것들을 즐기는 절기이다. 이 짧은 삶을 지나는 동안 주님께서 주신 것을 감사하며 서로 나누며 즐거워하는, 즉 '누리는' 절기다. 덧없음으로 끝나는 것은 기독교적이지 않다. 십자가 후에는 부활의 기쁨이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초막 생활 가운데 기쁨과 감사와 의미로 채우시고 이러한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하신다.
주님, 주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을 감사함으로 누립니다. 이 땅에서 짧은 낙을 누리기 위해 사는 것이 어리석은 것임을 알게 하시고, 주어진 오늘 하루 주님으로 인한 감사와 즐거움으로 채우소서. 내 입술로 주께 감사하며 영광돌리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