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들음과 더불어 초막절의 풍성함을 경험한 사람은 비로서 자신의 죄를 볼 수 있게 된다. 더우기 자신의 조상의 죄도 깨닫게 되는데, 잘되면 자기 탓 안되면 조상 탓하는 타락함에서 놓여서 자기의 죄 뿐만 아니라 조상의 죄에 대해서도 자복을 한다. 이러한 죄에 대한 자복은 믿음의 시작인데, 결과적으로 자신의 무기력을 자복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힘을 구하기 위해 여호와께 부르짖는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지만, 율법을 떠나 말씀을 잊었을 때는 자신들도, 하나님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말씀이 들어와서 믿음이 생기자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그들이 정확히 어떻게 여호와를 불렀을지, 야훼라고 불렀을지 아니면 아도나이라고 부르짖었을지 모르지만 율법에 나온 이름대로 아마도 불렀을 것 같다.

창세기부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기록이 나오는데, 죄짓기 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함께 했을 때는 굳이 여호와를 부를 필요 없이 항상 함께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죄를 짓고 타락하자 오히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부르셨고, 그 후에는 인간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 했다. 창세기 4:26에는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하는데 '에노스'라는 이름은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등의 뜻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약함을 발견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의지한다. 그리고 그것이 믿음의 시작이고 구속의 역사다.

신약에는 이제 더 실재적이고 가까운 이름이 주어졌는데, 바로 '구원하시는 여호와', '예수'이다. 그래서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얻는다.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고 요엘 2:32 "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의 말씀을 인용한다. 9:14에는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이라고 기록하는데, 구약적인 관점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주의 이름' '예수의 이름 (4:18, 5:40)'이었기에 문제가 되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었다.

로마서 10장에는 재미있는 구절이 나오는데, 동일하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3)'고 말씀하다가 14-15절에는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한다. 이 순서를 뒤집으면,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보내시고, 사도들은 전파하고, 전파할 때 듣고, 들으면 믿게 되는데, 믿을 때 결국 최종적으로는 '부른다'는 것이다. 즉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믿음의 시작이고 확증이다.

예수님, "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던 것을 봅니다. 주가 되시는 예수, 생명, 길과 진리가 되신 예수님을 매 순간 부르기 원합니다. 폴 워셔 목사가 '하루를 살며 내 입술에서 제일 많이 나온 말이 나의 하나님' 이라고 증거했다는데, 내 입술을 통해 필요한 말, 필요 없는 말, 남을 배려하는 말, 무례한 말, 상처주는 말, 무익한 말 등 많은 말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주 예수의 이름이 가장 많이 나오게 되기 원합니다. 주여! 주 예수여! 주께서 살아계시기에 주님을 부릅니다. "(주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 10:12)"신 주의 이름을 높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