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는 영어로 Deuteronomy인데 70인역에서 헬라어 Deuteronomion '두번째 법'이라는 뜻으로 번역한 것에서 유래한다. '신명'이라는 한자어도 '다시 명하다'의 뜻이다. 히브리 원어는 단지 '말씀이다'이기 때문에 '다시'라는 뜻은 없다고 하지만 70인역의 명칭을 듀테로노미온으로 한 것은 이유가 있는데 모세오경의 법들과 역사 그리고 모세의 마지막 유언 메시지를 반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 말씀은 어제 7절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아브라함부터 열거하는데, 이러한 기본 역사는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상식일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상기시키는데, 전체적 내용이 마치 사도행전 스데반의 설교같이 들린다. 스데반은 그 설교로 순교를 당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몰라서 그런 설교를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과는 다르게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시고 동행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섬세하신 동행하심과 베푸신 은혜를 너무 빨리 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본질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법과 율례를 보아도 3대 절기를 지킴으로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기억하게' 함이었다. 과거만을 붙잡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현재의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은 과거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함에 있다.

문제는 과거의 이러한 은혜를 어떻게 하면 오늘 새롭게 누릴 수 있느냐다. 단지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읽기만 하는 것으로는 새롭게 누리기가 쉽지 않다. 과거는 그냥 과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게도 많은 말씀의 내용이 새로운 것이 아닐 수 있다. 수년 혹은 수십년 교회를 다닌 사람들에게는 성경 말씀이 전혀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12절에 '구름 기둥' '불 기둥'이 언급되는데, 19절에는 또 다시 한번 더 언급된다. 즉 이러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역사를 현재에도 성령님을 통해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과 은혜 역시 변하지 않으시는데, 과거에 베푸신 것을 기억하며 오늘 그 은혜를 누려야 한다. 주님의 은혜는 그 한계를 알 수 없다.

주님, 힘든 삶과 상황과 형편 속에 있는 주의 백성들을 돌보아 주소서. 그들의 상황이 바뀐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주님 베푸신 놀라우신 은혜를 되뇌이며 주께서 멀지 않으심을 알게 하소서. 유혹이나 포기함이나 타락함에서 건지시고 주의 어떠하심을 오늘 새롭게 풍성하게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