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영광스러운 일이 주어진 사람들은 레위인들, 제사장들 (역시 레위인), 그리고 경우에 따라 선지자나 왕들 정도겠지만 그 외 특이한 부류의 사람들을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나실인과 다른 하나는 느헤미야에서 계속 등장하는 느디님 사람들이다.

 

레위인은 태어나면서 부터 종교적인 사역 특히 성전에서의 섬김이 운명적으로 맡겨진 사람들로서, 그러한 일들은 레위인 외에는 할 수 없었지만, 소위 나실인으로 자신을 구별하면 일정 기간 (혹은 평생) 서원하는 동안에는 마치 레위인 처럼 섬길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매우 특별한 제도인데, 남자건 여자건 나이가 어떻건 자신이 어떤 출신임을 막론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자원해서 자신을 드릴 때 영광스런 섬김의 위치를 얻을 수 있게 한다.

 

물론 나실인으로서의 제약 혹은 요구가 있는데, 서원 기간 동안 머리를 깍지 않아야 하고 포도주나 독주를 마실 수 없는 것은 물론 포도와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시체를 만질 수 없었다 (6:1-21).  즉 영적인 원리로는 자신의 외모를 돌보는 것에 공을 들이지 않음으로 지속적으로 주님을 추구하는 것에 집중해야 하며, 삶의 위로와 즐거움을 주는 그 어떤 요소와도 멀리해야 했고, 영적으로 죽은 것들, 즉 사망의 어떠한 것에서 멀리해야 하는 것이다.

 

나실인은 사사기 삼손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 처럼 보이지만, 애가 4:7, 아모스 2:11-12에도 언급되고 사실 많은 나실인이 구약에 등장하는데 사무엘도 그 중 하나다.  사무엘이 에브라임 지파 출신임에도 제사장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해 그의 계보 연구를 통해 사실은 사무엘이 레위 지파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사무엘은 레위인보다는 나실인의 모습이 더 많다. 

 

삼상 1:11에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고 말한 것을 기록하는데, 이 내용을 보면 사무엘은 늙을 때까지 한번도 이발하지 않은 나실인이었음을 볼 수 있다.

 

신약에 오면 침례자 요한도 나실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고, 바울 역시 사도행전에서 ‘결례’를 행함으로 나실인의 실행을 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사실 신약의 모든 비이스라엘인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은 나실인의 원리를 따르는 이들이다.  모두 레위인이 아니며 더우기 육신적으로는 모두 이방인들이기 때문이다.

 

나실인은 자신이 자발적으로 서원해서 섬기는 자유가 있지만 이방 출신 느디님은 이에 비해 자손 대대로 막일에 동원되는 노예의 삶을 벗어날 수 없었다.  레위인 처럼 뭔가 있어 보이는 의식을 행하는 일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행복했다.  물 긷고 나무 패는 소위 막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자신들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던 것을 알았기에 행복했고, 할 일이 있어서 행복했으며, 특히 허드렛 일이라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역대상 9:2에는 “먼저 그 본성으로 돌아와서 그 기업에 거한 자는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과 느디님 사람들이라”고 기록하는데, 그 본성으로 돌아와도 결코 나아질 수 없는 삶을 살 것을 알았음에도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함께 돌아온 이들이 느디님 사람임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이방인이며 노예였지만 항상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함께 언급되는데, 특히 에스라 7:24에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제사장들이나 레위 사람들이나 노래하는 자들이나 문지기들이나 느디님 사람들이나 혹 하나님의 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받는 것이 불가하니라 하였노라”고 하며 세금 문제 역시 면제되는 특별한 사람들로 묘사된다.  노예에게 과세를 하나 마나한다는 것이 좀 이치에 맞지 않게 들리지만 아무튼 이들은 과세에서도 면제된 이들이다.

 

오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 (벧전 2:9)..”다.  더 이상 이스라엘 민족만 택함 받은 것이 아니고 레위인들만 섬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믿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족이며 동시에 제사장들이고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이것을 현실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은 나실인의 실행과 느디님의 위치를 택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주님, 자신을 높이려할 때 낮아지게 되며 자신을 낮추면 주께서 높이시는 것을 압니다.  자원해서 자신을 구별하며 자질구레하게 보이는 일들을 맡아 함으로 섬기는 위치에서 주님을 추구하는 행복을 맛보기 원합니다.  이 특별한 레위인의 섬김을 오늘 우리에게 오픈하심을 감사합니다.  교회의 여러 필요한 봉사들을 통해 섬기는 자부심과 영광을 발견하게 하시고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하소서.  오늘도 나의 목숨을 부지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일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허드렛일 같아 보일지라도 그 안에서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