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서를 마무리하는 5장 후반절을 보며 이 책은 요한의 제2 복음서라는 느낌이 든다.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말하며 특히 20절은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고 증거하기 때문이다. 원어에서는 '그는' '이는 (후토스)' 이라고 되어 있다. '그는' 이라고 하지 않고 '이는'이라고 했을까? 그래서 해설이나 이해가 좀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요한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멀리 계신 ''가 아니라, 우리에게 소개하고 싶은 바로 옆에 계신 '이 분'이다. 요한 복음에는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기록이 없는데, 예수님의 승천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요한에게는 그리스도께서 항상 그의 옆에 계셔서 함께 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멀리 하늘 보좌에 계신 주님 ''가 아니라, 옆에서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픈 '이 분'이 되신다. 그리고 바로 '이 분' 그리스도께서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 20절에는 ''이라는 말이 계속 나오는데, '그의 아들 안에서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 있음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왜 이렇게 '진리의' 혹은 '참된' '알레띠노스'를 계속 쓰는 걸까? 요한복음 1:14 말씀처럼 주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절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로 이어진다. 서신의 마지막으로 보기에는 끝이 좀 이상한데, 거짓된 우상을 경계하면서 동시에 참되시고 진리되신 그리스도를 부각시킨다. 이것은 구약에서 계속 문제가 되었던 보이는 우상의 문제 만이 아니라,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부인하는 것은 모두 우상임을 깨우쳐 준다.

주님, 기도는 아버지 하나님께 하는 것이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조차 '예수'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 없이는 아버지께로 올 수가 없음을 기억합니다. 주의 종 요한이 우리에게 그토록 알기 원했던 참된 하나님을 더 깊이 더 확실히 알게 하소서.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내가 기도할 때에 앞에서 듣고 계시는 분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관계가 두려움을 내어 쫓고, 이런 가까움이 나에게 만족과 위안이 됩니다. 주님을 더 자세히 보게 하시고, 손으로 만지게 하소서. 주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