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으로 정의되셨고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지만, 구약에서는 경악할 정도로 철저히 진멸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다. 그래서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해야 하고 구약과 신약의 경륜 차이를 알아야 한다.
창세기부터 여호와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철저히 진멸하셨고, 애굽의 장자들도 멸하시고 광야에서 불순종하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멸하셨으며, 민수기에도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가나안 족속을 멸하신 사건이 있고 (21장), 특히 오늘 여리고를 시작으로 구약에서는 몇몇 족속을 철저히 진멸하는 기록이 속속 등장한다. 만일 하나님이 사랑이시라고 해서 항상 모든 것을 묵인하고 용서한다면 '사랑'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마지막 날에는 심판이 있고 불못이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물론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21절)'는 것을 오늘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여 특정 민족이나 부류에 대해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한 순종은 구약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국한된 것이기 때문이다. 동성욕자들을 죽이는 것이나 그 외 다른 죄인들에 대해 돌로 치라는 명령들 역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명하신 명령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구약의 명령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죄가 무엇인지 분별하게 도와준다.
하나님의 사랑은 헤픈 사랑이 아니다. 온 우주를 구속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보혈을 흘리셨지만 그 구원을 제대로 받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눅 4:26-27절에서 주님께서는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고 말씀하신 것 처럼 구원 받은 것은 정말 작은 일이 아니다. 온전히 주님의 은혜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한 진멸을 통해 그 사랑을 더욱 확인시키신다. 나는 진멸되어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고 그만 나타나셔야 한다. 他必兴旺,我必衰微! (타필흥왕 아필쇠미 '타삐싱왕 워삐샤이웨이' 요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