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는 성공을 거듭한다. 하나님의 꿈이 그의 꿈이 되었기 때문이다. 만사형통은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질 때 쓰이는 말이다. 야고보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약 4:3)” 고 말씀했고, 사도요한도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요 5:14)”고, 또 사도 바울도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고, 그리고 주님께서도 “내 이름으로 (원어에는 ‘이름 안에서’ 즉 주님의 인격과 뜻 안에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 14:14)” 고 말씀하셨다.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예수의 이름으로 구한다. 그리고 얻으면 하나님께서 도왔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한다.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엄밀히 말해 그러한 성공은 세상 사람들의 성공과 다를 것이 없다.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꿈을 위해 자신의 잠재능력을 활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마치 백지 수표에 예수의 서명만 써 넣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사기다!
만일 여호수아가 하나님이 주신 땅이 아닌 다른 곳을 점령하려 했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꿈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만 집중하기도 벅차다. 그의 광대하심 안에서 뛰노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소위 ‘주의 종’이 목회에 성공하는 것이나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만이 주의 뜻 혹은 하나님의 꿈일까? 그렇지는 않다.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주신 이상은 그리스도를 닮음으로 그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이고 (엡 4:13), 믿는 이들에 대해 단체적으로 주신 이상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건축하는 것에 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것은 대형교회를 만드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공동체가 ‘교회’로 서기까지는 ‘먼저 그의 왕국과 그의 의를’ 구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며 ‘그의 뜻’을 추구하는 이들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