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생명의 삶 해설에서 유다는 야곱의 넷째였지만 창 49:8-12의 말씀에 의해 '실질적 장자'가 되어 첫번째로 땅을 분배 받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실질적 장자권'은 요셉이 받았고, 유다는 '영적 장자권'을 누린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대상 5:2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는 말씀처럼 요셉 지파는 실질적으로 두 몫의 기업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도를 보면 므낫세가 둘로 나뉘어 므낫세 반 지파가 되었는데, 그 땅 역시 두 곳을 받았고, 에브라임 지경까지 더하고 보면 유다땅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넓어 보인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예언에 의해 유다가 장자가 되고 유다지파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때문에 유다는 '영적 장자권'을 소유하지만, '두 배의 몫'(신 21:17)을 받음으로 이 땅에서의 실질적 장자권은 요셉 지파가 누린 것이다.
이러한 이해가 필요한 것은 실질적 장자권과 영적 장자권이 같이 간다면 제일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항상 그렇지는 않기 때문인데, 오늘 생명의 삶 제목이 '요셉처럼 자손에게 복된 인생이 되십시오' 이지만, 여기에 '복'이라는 개념이 마치 현실적인 부와 연결시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소위 예수님 '잘 믿으면' 자손들이 물질적으로 복 받게 된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오히려 가정생활이 힘들어지고 자손들이 제대로(?) 교육을 못받아 현실적으로는 풍족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요즘이야 많은 선교사들이나 목회자들이 선교지에서조차 자신의 자녀들은 특별히 영어 학교로 보내서 현지 말을 아예 못 배우게 되는 선교사 자녀들도 있는 실태이고, 거기에 대해 아마도 나라도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해는 하지만, 그러한 이들에 비해 정말 주님 때문에 많은 것을 잃게 되는 이들, 특히 자녀 교육을 제대로 못시킴으로 자녀 세대에서는 현실적 삶이 쉽지 않아지는 경우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어떠한 보상이 있는지, 마치 독립군 후손들과 친일파 후손들의 차이를 떠오르게 한다.
그래서 자녀들이 참으로 '복을 누리게' 하는 '제대로 된' 교육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소위 좋은 대학 보내서 좋은 직장 갖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제대로 된 교육은 부모가 먼저 자녀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고 삶의 참된 의미를 가르치며 영원을 바라보며 살게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그 영'을 따라 살도록 돕는 것이다. 이럴 때 시련이나 고난을 통과하는 중에도 넉넉히 이기며 이러한 이김은 그들에게 '두 몫 (double portion)'의 장자권을 누리게 한다.
마지막 때를 지나 천년왕국이 있는 것은 그래서 믿는 이들에게 위안이 된다. 영원을 사모하는 우리는 이 땅에서 '실질적' 장자권을 누리지 못해도 그 날 주님께서 온전히 왕으로서 천년 동안 이 땅을 다스리실 때,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될 것이고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