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의 도피성에 대한 내용이 민수기 35장에는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특히 고의적인 살인과 실수로 인한 살인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놓았다. 사람을 죽이는 자체는 살인 즉 'kill' 이지만, 고의로 악의를 가지고 죽일 때는 '살해' murder가 된다 (국어 사전에는 이 둘의 차이가 명확하지 않다). 실제적으로는 여러가지 복잡한 경우가 있겠지만 결국 살인인지 살해인지를 놓고 고의로 죽였을 때는 마찬가지로 살해자를 죽이라고 율법은 명한다.

그런데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 그리스도는 마 5:21-22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또 사도 요한도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증거한다.

이런 면에서 그 누구도 살인자임에서 자유하지 않다. 그래서 도피성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과거 도피성들은 실수로 인한 살인자들만 받았지만, 참된 도피성이신 그리스도는 고의로 사람을 죽인 악한 심성의 사람들도 받으신다. 다만 회개함으로만 그 안에 들어갈 수 있고, 또 들어가면 살해자는 변화된다.

궁금한 것은 만일 도피성 안에서 누군가를 죽였을 때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다른' 도피성으로 피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이제 다른 도피성은 없다. 우리에게 있는 피난처는 그리스도 뿐이다.

도피성에 피했던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자유롭지 못한데, '살인자'라는 신분에서 벗어나려면 '회중에 의한 재판' 또는 '대제사장의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그때까지 그는 낯선 땅에서 괴로움을 받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의로운 율법의 기준을 볼 수 있는데, 한 사람의 죄에 대해 '회중' 즉 공동체가 재판하는 책임의식을 볼 수 있고, 또 하나는 대제사장의 죽음이라는 기준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라는 참된 도피성 안에 존재하는 공동체는 한 개인을 정죄하는 것 보다는 그의 아픔과 실수를 자신의 것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대제사장은 율법을 통해 심판을 하게 되는데, 그가 죽게 되면 율법의 심판에서 자유하게 되는 효과를 유발한다. 마치 주님께서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 ( 2:14)과 같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당신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를 살인자의 신분에서 하나님 자녀의 신분으로 바꾸셨다.

주님, 나의 실존적 죄인의 신분은 '내가 알고 네가 알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압'니다. 나는 살인자요 간음자요 우상숭배자요 진노의 자녀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를 인해 찬양 드립니다. 참된 도피성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