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지파가 땅을 배정받은 후에야 비로서 ‘레위 사람의 족장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족장들에게 나아와’ 모세의 명을 상기시킨다 (1, 2절). 어찌보면 영적 안내자 혹은 조력자들인 레위인들에게 가장 먼저 혜택을 주는 것이 맞는 것 같지만 그들은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이 아니기에 현실적으로는 가장 나중에 주거지 및 목초지를 배정 받는다.
레위인들은 아마도 그들이 가장 나중에 거주지를 배정받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래 기다렸다. 다른 지파들이 잘 되어야 그들도 잘 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상대적인 권리를 포기했고, 그 권리포기는 사실 그들에게 현실적 대안이 된다.
고후 6:10에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말씀하는데, 믿는 자로서 가난하지 않고 그냥 자신이 부자면 좋겠지만 여기에는 영적인 원리가 있고, 그것은 레위지파의 섬김과 상통한다. 많은 사람들을 부요하게 하면 결국 자신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똑같이 일해서 똑같은 혜택을 받자’라는 공산주의는 결국 ‘똑같이 못사는’ 것이 되어 버렸다.)
2차 대전 후에 미국은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놀라운 일을 감행하는데, 패전국들을 비롯해 여러 국가에게 천문학적인 액수의 원조를 거의 무상으로 제공한 것이다. 자본주의적인 발상으로는 맞지 않는 것이고 특히 팬아메리카주의를 지양한다면 한면으로 괜한 짓을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결론적으로 미국의 시각이 맞은 것은 전체 글로벌 경제에는 놀라운 효과를 유발해서 아직도 미국은 헤게모니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게 된 것이다.
주면 남는 것이 없어서 못주겠다거나, 내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나만 소유하고 있겠다거나, 혹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결론적으로 내것을 챙기지도 못하게 할 수 있다.
주님, 다른 이들이 복받고 그 복을 누리는 것에 대해 기뻐하게 하소서. 주님은 우리에게 복이 되시고, 주를 믿는 우리도 복이 되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레위 지파처럼 기다릴 수 있게 하시고, 형제 자매들이 온전히 복을 누릴 수 있도록 위해 마음껏 기도할 수 있는 영적 성숙을 허락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