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0절의 말씀에 의하면 유대인으로서 영광스러운 것들을 기록했다.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고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고 맹인의 길을 인도하고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 되고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인' 것은 너무도 귀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에 대해 '스스로 믿'은 것이 문제다.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원어로는 자신에 차 있음을 말하는데, 문제는 이렇게 되어 스스로 속이게 됨에 있다 ( 6:7, 1:26, 요일 1:8).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풍성해서 말씀을 배우고 깨닫게 되면 마치 그 말씀이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는데, 시험을 온전히 통과하기 전까지는 결코 그 말씀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되지 못한 것이다. 깨닫는 것이나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 귀하신 말씀에 '도취되어' 마치 내 자신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속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긴 거리가 머리에서 가슴까지라고 얘기들을 하지만, 이상하게 깨닫고 감동 받은 후에도 너무 빨리 잊어서 그 말씀을 온전히 살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그 보다 더 긴 거리는 가슴에서 손과 발까지의 거리다.

바울은 스스로 속지 않기 위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고 말씀한다. 정작 나 자신은 가르치지 않고 있는지, 엄밀히 도둑질은 하고 있지 않는지 (예를 들어 회사에서 일하면서 일 외에 다른 것을 하는 것도 회사에 대해 써야 하는 시간을 도둑질 하는 것이 된다. , 일하면서 페북 열심히 하는데.. ㅠㅠ), 마음으로도 음욕을 품는 간음을 하지 않는지, 종교적인 우상은 가증히 여기지만 정작 종교건물에 속한 물건을 빼돌리거나 내 마음대로 쓰지는 않는지...

다른 이들은 모를 거라 착각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표면적 유대인의 정체성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 처럼, 교회에 출석하고 헌금 바치고 여러 가지 일을 한다 해도, 마음에 할례 받지 않고 영 안에 있지 않다면 하나님의 칭찬이 없다.

주님, 저의 약함과 악함을 드러내심을 감사합니다. 저 자신은 계속 폭로되어야 하고 그럼으로 주님을 더 얻어야 함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