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핸드폰으로 적은 내용을 집에 돌아와 조금 바꾸었습니다.
율법은 분명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이고 의이지만 그와 별개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21절).
율법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매우 차별적인 것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는 만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차별이 없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는 말씀은 뒤집어 이해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의미다. 죄인으로서의 한계에 메여 인간의 영광을 구하는 것 보다는 원래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것이 사람의 창조 목적이다.
그런데 24절에는 놀라운 말씀이 나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다'고 하는데 소위 '칭의'라는 말이 매우 불완전하게 들리는 구절이다. 영어로는 being justified 즉 수동태로 쓰였기 때문에 단지 의롭다고 '불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정말로 '온전히 의롭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말로는 '이신득의'라고도 하는데 '득'역시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다시 '믿음'이라는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 같이 들려서다. 그래서 나는 '이신수의'라고 하고 싶다.
복음이 무엇인지 이제 서서히, 아니 사실 갑자기 드러나는 것 같다. 25절에는 '간과'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신약에 단 한번 나오는 단어로 '유월절'의 '유월' 즉 '넘어가다'와 같은 단어이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설명하면서 바울은 유월절 사건을 상기시킨다. '우리 조상들이 애굽에서 나오기 전 하나님이 장자를 치실 때 우리가 애굽인들 보다 더 착해서 죽지 않은 것이냐? 오직 문설주에 바른 피 때문이 아니냐?' 라고 말씀 하는 것 같다. 즉 이러한 믿음으로 인한 의는 율법의 의를 앞선 것임을 분명히 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오직 믿음의 법'임을 강조한다 (27절). 율법과 함께 믿음 역시 법이라고 말씀 하는데 '의'는 항상 '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오히려 율법을 굳게 세운다'는 부분인데 많은 이들이 이 구절을 가지고 다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구약의 제사 등은 지킬 필요가 없지만 도덕 규율은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 행 15:9-10에는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 은혜로 구원 받는 줄로 믿노라 하니라'고 말씀하며 유대인이나 이방 제자들이나 이제 율법지키는 것에서는 자유함을 선언한다.
문제는 신약 경륜에 의한 율법보다 더 높은 기준의 새 계명을 지키는 이들을 찾기 힘들고, 그래서 아마도 다시 율법이 언급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복음의 첫째 선포는 율법에 의한 의, 행함에 의한 의에서 해방됨이다!
그래서 율법을 굳게 세우는 이유는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믿음에 의한 의를 확증하기 위함이다. 율법이 없으면 죄도 정의되지 않고 그에 따라 의의 기준도 없으며 나아가서 믿음에 의한 의 역시 설명할 수 없게된다.
아.. 주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더 깊이 알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