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의의 관계를 말하면서 바울은 창세기에 나온 아브라함의 예를 인용한다. 율법과 믿음, 유대인과 이방인 등에 대해 설명하다가 모세 훨씬 이전의, 이 모든 것의 시작이며 명분인 조상 아브라함을 말하며 믿음의 원리가 율법은 물론이고 할례 전에도 이미 보이신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창 15:6을 인용한 구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라고 한 구절은 성경에서 '믿음' '' 두 단어 모두 처음으로 등장하는 구절이다. ''에 해당하는 단어는 창 4:7 13:13에 나오지만, ''는 처음부터 '믿음'과 함께 간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 몰랐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 12:1)'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도 ''이라고 불리는 많은 것들이 있었기에 아브라함은 여호와께서 단지 그들 중의 하나인 잡신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여호와께서는 '영광의 하나님 ( 7:2)'으로 나타나셨고, 15절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음으로 의롭게 여김 받을 때까지 아브라함에게 조카 롯을 사로잡아간 네 왕에 대해 승리하게 하심으로 여호와께서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14:22)'임을 고백하게 했다. 믿기 위해서는 알아야 하고 (요일 4:16), 또 믿고 알 수 있다 ( 6:69).

믿음을 의로 여기시는 이유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전하시고 완전하신 절대자 앞에서 그 누구도 선을 행함으로 인정받을 수 없고, '일을 아니할지라도' 단지 믿으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 그와는 반대로 율법을 지킴으로 의를 이루어 내려는 노력은 오히려 어이없게도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4절에는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라고 말씀하는데, '보수'에 해당하는 원어는 ', 오뻬일레마'로 재미있게도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준것 같이'에서 ''와 동일한 단어다. 지난 1:14 '빚진 자라'와 같은 말인데, 만일 율법을 지킴으로 의를 얻으려고 한다면 마치 하나님에 대해 채권자의 위치를 취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죄인으로 만든다는 의미다! 그래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는 것은 단지 그를 믿는 것 밖에는 없다.

이러한 원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상속자'라는 말을 하는데, '상속자'가 되기 위해 무언가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상속은 온전히 은혜이며, 전혀 자신의 힘으로 일구어 놓은 것이 아닌 부를 값없이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심을 믿습니다. 이러한 것이 믿음으로 되는 것임을 깨닫고 그 신비에 놀랍니다. 제가 내보일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지만, 이 신비로운 믿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매사에 주를 인정하게 하소서. 순간 순간이 사역되게 하소서. 다시 한번 사역이라는 것은 단지 주를 믿는 것임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