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는 것을 보면 아직도 희망이 있다! 완전히 버리셨다면 논쟁하실 필요가 없다. 일방적인 주의 사랑과 긍휼은 우리와의 논쟁으로 이끄신다. 그런데 이 논쟁도 알고보면 일방적이다. 하나님께서 기준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 일방적으로 보일 수 있다.)
2절: 어제 3장 4절에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라고 했는데 오늘 말씀 1-2절은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고 말씀한다. 영적인 관심이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진실 인애 및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고 그에 대한 결과가 저주 속임 살인 도둑질 간음 포악 피 등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의 모습이다.
3절: 결과적으로 백성들 뿐만 아니라 그 땅과 함께한 피조물들도 고난을 받는다.
4-5절: 영적 질서도 무너지고 인륜도 사라졌다.
6절: 하나님을 떠난, 혹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난 지식은 교만하게 하지만 (고전 8:1) 우리가 그 안에서 자라가야 할 지식,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를 살린다 (벧후 3:18, 빌 1:9, 빌 3:8).
7절: 가난한 곳에는 교회들이 새롭게 생기지만 물질적으로 풍요한 곳에서는 교회들이 문을 닫는 곳이 많다. 하지만 물질의 유무에 상관없이, 간혹 자원해서 가난한 삶을 사는 귀한 이들도 있고, 능력이 있음에도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족함으로 부자 되기를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 부자들 중에도 신실하게 주님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는 이들 역시 존경할만 하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8절: 이 부분이 재미있다. 개역개정에서는 ‘속죄제물’로 나와 있지만 영어 여러 번역본에서는 그냥 ‘죄’로 되어 있다. 그런데 NLT라는 영어본은 “When the people bring their sin offerings, the priests get fed. So the priests are glad when the people sin!” 라고 번역해 놓았다. 정말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경찰이 존재하는 이유는 범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찰은 필요악이다. 제사장 역시 하나님의 귀한 직분이지만 죄가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 어느 선교사님은 이 세상에 선교사들이 다 없어질 그 때까지 선교하신다고 하는데, 선교의 의미를 아시는 분이다. 선교사들 중에 후원을 많이 받아 정말 물질적으로 너무 풍요롭게 사는 이들도 있다.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겠지만 과연 이들이 선교사들인가 하는 의심이 든다. 물론 선교사들 중에는 자비량으로 이름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이들 역시 많이 있다.
9절: 영적 실체가 사라지고 기준이 흐려지면 일반 백성이나 직분을 맡은 주의 종들이나 매한가지가 된다. 과거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말씀과 기도 생활에 충실함으로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던 주의 종들에 비해, 상황적으로 보면 요즘은 너무 좋아졌지만 오히려 영적으로는 기도도 소위 ‘평신도’들 보다 하지 않고 말씀 연구에도 게으른 이들이 많다. 주님께서 친히 ‘그들의 행실대로 벌하며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리라’ 말씀한다.
10절: 배부름과 만족은 마음의 문제이다. 아무리 먹어도 살만 찌지 만족함은 없다. 그래서 욕심을 내어 더 먹는다. 하지만 다시 만족은 없다. 음행 역시 마음의 문제이고, 음행함의 목적은 쾌락이지 자손을 보는 것이 아니기에 ‘수효가 늘지 못’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의 문제는 ‘여호와를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이기는 방법은? 1절처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는 명령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말씀을 듣고 여호와께 순종하며 따라야 한다.
주님, 주의 말씀이 내 안에 풍성히 거하시기 원합니다. 지금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고, 전에 읽었던 말씀이 생각나기 원합니다. 말씀으로 짜여지기 원하고, 말씀끼리 내 안에서 부딪히지 않기 원합니다. 더 분명해 지고, 상황마다 분명한 레마의 말씀이 들리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즉각적으로 순종함으로 주의 종의 삶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