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5절까지의 말씀 중에 14절까지는 모두 부정적인 내용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15절의 말씀인데,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고 기록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할 때까지 기다리신다. 우리가 주님의 얼굴을 구하기 원하신다. 우리가 고난 중에 하나님을 욕하지 않고 대신 주님을 간절히 구할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은혜다. 고난의 유익이다.
주님과 동행함이 그의 백성의 본분이지만 가끔 멈춰 생각해 보면 나는 전혀 주님과 동행하고 있지 않다. 어떤 사역으로 보이는 일이나 교회 일 그리고 영적으로 보이는 무엇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실상은 주님과 상관없이 나 혼자 하고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내 생각은 주님으로 차 있어야 하는데 (소위 성령 충만), 막상 주님은 안계시고 사역에 대한 계획과 그 외 여러가지 세상 것들에 대한 것으로 차 있다. 아무리 말씀을 배우고 깨달음이 있어도 자라지 못한 나의 모습을 본다. 1절 말씀 처럼 깨달음이 있을 때는 주님의 심판이 있음을 깨닫는다…
이것은 죄의 문제고, 마음의 문제며 또 교만의 문제이다 (5절). 그런데 이러한 내적 문제의 원인이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4절)’고 말씀한다. ‘음란한 마음’은 원어로는 ‘음행의 영 (루아학)’이다. 영이라는 것은 신비한 것이다. 생각보다, 마음보다 더 깊은 것이 영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영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방해하는 영이 ‘음행의 영’임을 말씀한다. 하나님을 떠나면 음란의 영이 우리의 내면을 채운다. 사람은 깊은 곳 어떤 무언가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로마서 12장 2절에서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 (원어 시험) 하도록 하라’고 명령한다. ‘본받다’는 영어로 conform (모양을 같게하다), 헬라어로는 ‘수스케마티조 (순+스키마)’ 인데, 외형적인 모습 혹은 어떤 ‘척’하는 것을 말하는 반면, 같은 로마서 8:29에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의 본받음은 영어로는 같은 conform 이지만 헬라어로는 ‘수몰포스 σύμμορφος (순+몰포스)’ 여서 완전히 바뀌는 것을 말한다. 특히 ‘변화를 받다’는 그 유명한 단어 ‘메타몰포시스 (메타몰포오오)’인데 생각을 (원어)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것이다.
우리 앞에 하나님의 성령과 음행의 영이 있는데, 이 둘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의지와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각이다. 생각은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고 또한 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영이 우리가 알지 못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면 그 영의 지배를 받도록 선택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생각이다. 이스라엘과 에브라임과 유다는 음행하고 넘어졌지만 (5절)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는 때가 오는데 바로 ‘회개’할 때 즉 생각을 바꿀 때이다.
할렐루야 주님! 이 아침에 모든 부정적인 것에서 저를 구원하소서. 주의 이름을 찬송하고 주의 얼굴을 구합니다. 주님은 나를 건지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내 앞에 생명 나무와 선악지식의 나무가 놓였음을 다시 봅니다. 이 둘은 또한 성령과 음란의 영임을 봅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주님을 선택하기 원합니다. 생명을 택하고 성령을 택하며 그리스도와 동행하기 원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주님을 인식하게 도와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