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많은 내용이 읽기에 피곤하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많은 부분이 이스라엘의 범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도 역시 그런 맥락인데, 이렇게 거듭되는 내용들의 근본에 대해 생각해 보니 궁극적으로는 ‘언약’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언약은 ‘계약’과는 다른데, 계약이 쌍방간의 약속이라면 언약은 일방적인 약속을 의미한다.   문자적인 의미로 언약은 ‘구두약속’인데, 영어로는 covenant로서 성경적인 의미에 주로 쓰인다.

 

히브리어로는 언약과 계약은 모두 ‘약속’이라는 ‘버리트’ 라는 단어를 쓴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온전하시고 전능하시기 때문에 불완전한 인간과는 쌍방적인 계약 보다는 일방적인 약속을 하심을 생각할 때 ‘언약’이라는 단어를 구별해서 쓰는 것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창세기 12장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가 무얼 하면 내가 무얼 하겠다’가 아닌 일방적으로 ‘내가 복을 주겠다.  너로 복이 되겠다’ 라는 언약을 세우신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언약이 모세 때에 와서 ‘쌍방적인’ 계약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바로 율법이다.  십계명 중 유일하게 ‘약속’있는 계명 ( 6:2)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빼면 모두 ‘하라’ ‘하지 말라’ 등 일방적인 명령이다.  그리고는 율법이 주어졌는데, 율법이 왜 주어졌느냐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지만, 율법의 기본이 ‘쌍방’적인 것 즉  잘 지키면 잘 되고 못 지키면 망하는 것임을 염두해 둔다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 정말 이스라엘이 그러한 율법을 잘 지킬만한 성숙한 백성이라고 생각하셨을까?  아니면 성숙하게 될 것을 기대하셨을까?  그런데 한 면으로 그 주어진 경위를 보면 인간의 교만이 숨어 있음을 볼 수 있다.  

 

( 19:8)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하매

( 24: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 24: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 5:27)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있게 다 듣고 지키고 행하겠다고 말했지만 얼마되지 않아 금방 법을 어긴다.  이러한 백성에 대해서는 은혜의 언약 밖에는 없다.

 

결혼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결혼은 언약인가 계약인가?  원래는 언약이지만 이제는 계약으로 변해버린 것 같다.  그래서 이혼이 너무 쉬워졌다.  한쪽만 약속을 어기면 깨어지기 때문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고 남편은 아내를 일방적으로 아가페 하지 않는다.  결혼관계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보여 주는 것이라면 ( 5:32) 이것은 계약이 아니라 언약이다. 

 

주님, 주님의 말씀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의 언약임을 고백합니다.  저의 의지보다, 저의 죄성보다 더 강한 것임을 믿습니다.  이제 다스려 주시고 저의 마음과 생각을 거룩하게 하소서.  모든 분냄과 악의에서 해방시켜 주소서.  성령님의 실체적인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주의 언약에 붙들린 하루 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