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 범위에 대해 생명의 삶 제목은 ‘열매 맺는 인생은 방황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내용 중에 ‘열매’가 세 번 나오고 또한 그 열매 없음의 결과로 에브라임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 떠도는 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삶을 돌아보면 열매가 있는지에 대해 자신이 없다. 세상적인 성은 물론이지만 영적인 면에서도 성령 하나님의 ‘아가페’라는 열매의 8가지 모습도 (갈 5:22-23) 찾기 쉽지 않고 내가 전도해서 구원받은 이들도 요즘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신약에서 ‘열매를 맺다’라는 동사를 많이 찾을 수 있는데 대부분 현재형이기 때문에 지금 나에게 열매가 없다면 슬픈 것이다. 하나님 앞에 지금 내가 보여드릴 열매가 없는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열매는 내 노력의 결과나 내 힘으로 맺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거할 때 맺는다. 아가페이신 하나님께서는 아가페를 맺으시고, 이는 ‘성령의 열매’이므로 성령께서 맺히시는 것이기에 나는 단지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요 15:2에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하는데 가지 중에 ‘내게 붙어 있는, (원어에는 내 안에)’ 것들 중에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 안’으로는 부족하고 그 안에 ‘거해야’함을 말씀한다.
사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안에’ 있던 하나님 백성이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 ‘거하지’ 못했다. 그리고 방황한다. 예수님 ‘안으로’ 믿은 우리들도 그 ‘안에’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안에 계속해서 ‘거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의 노력은 우리 자신이 열매를 맺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는 (빌 3:9) 노력이고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려는 (빌 3:12) 노력이다.
열매 맺는 문제에서 위로가 되는 것은, 주님께서는 현재 우리에게 온전히 아름답게 ‘익은’ 열매를 요구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선은 열매 ‘맺는’ 것을 원하시는데, ‘맺다’라는 헬라어는 ‘뻬로 φέρω’ 라는 단어로 열매가 먹기 좋게 완전히 익은 상태를 말하지 않고 단지 ‘나오다’를 의미한다. 주님께서 마 21장 19절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셨을 때 찾고 계신 것은 풍성히 익은 열매가 아니라 열매의 ‘봉오리’다 (이를 가리키는 단어가 있을텐데..). 그 ‘때’가 아직 먹을 수 있는 열매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막 11:13).
딤전 6:6에는 ‘자족하는’ 문제가 나오는데,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고 말씀한다. 현재에 만족하는 것이 좋을 수만은 없는데, 더 이상 발전에 대한 욕심도 없고 나의 부족하고 죄된 상태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포기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나에게 아직 성숙되고 아름다운 열매는 없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고 나의 가정에 대해 감사하며 확장된 공동체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있음을 감사한다면 불만을 내려놓고 주님의 베푸심에 만족할 수 있다.
주님, 상황으로 말씀을 해석하지 않고 말씀으로 상황을 이기게 하소서. 자랑할만한 열매를 보여 드릴 수는 없지만 주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심으로 열매가 맺힘을 감사합니다. 오늘 주 안에 거하는 노력, 주님께 잡힌 바 되려고 달려가는 노력을 하겠습니다. 그럴 때 방황이 그칠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