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이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대적에게 쫓기던 다윗에 비해서 나의 삶은 너무도 평안하기만 하다. 하지만 편안한 삶 속에서도 원수의 공격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특히 요즘 미디어를 통해 많이 들어온다. 한국이나 미국의 상황에 대해 정말이지 너무도 많은 여론이 매일 보도를 하고 여기에 더불어 여러 사람들이 제각기 의견과 또 저마다 뉴스를 내놓고 있는데, 정식 보도가 아닌 개인들이 전하는 내용들은 물론이지만 정작 미디어들의 보도 내용도 소위 ‘카더라 (2절)’ 를 넘어 ‘카더라 카더라’ 통신이 많아 과연 어디까지 얼마나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한국은 지금 한국 정계의 여러 문제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있고 한국은 물론이지만 눈을 돌려보면 미국과 러시아, 시리아 문제, 터키, 중국과 필리핀, 북한, 일본 등 결국 전쟁으로 치닫게 될 것 같은 형국이다. 실제적인 국제적 전쟁에 돌입하게 되면 모든 사회 전반이 전쟁을 축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사실 그 전에 ‘전쟁 (혹은 난리)의 소문 (마 24:6)’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이러한 불안함 가운데 주님의 몸된 교회가 믿음과 분별로 바르게 서서 힘이 되고 비전을 제시해 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현실에서는 기독교 계 내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로 아우성이다. 결국 마지막 때에는 (정말 슬프지만) 각 개인이 성령 안에서 분별하고 소위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몸이 하나임을 인정하는 것은 지속되어야 한다.)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합해서 850명을 대적할 때 그는 혼자였다. 다윗도 마찬가지로 그의 대적은 ‘나’를 치고 대적한다고 말한다 (1, 2절). 하지만 엘리야도 다윗도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신 여호와를 의뢰하고 앙망했다 (3절).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4절).
일반인들이 소위 ‘사단의 깊은 것 (계 2:24)’을 알기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듣는 여러 가지 것들의 진위에 대해 제대로 알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는 것이 필요하고 그 때 비로소 주님의 음성을 들을 것이다.
주님, 주께 의뢰하고 맡길 때 나는 요동치 않습니다. 이러한 믿음 주소서. 모든 것을 맡기고 진정 편히 안식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 되기 원합니다. 세상의 아픔과 혼란에 대해 주님의 눈과 심장 가지고 그 뒷면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하소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실 때 모든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음을 봅니다. 나의 연약함과 한계와 무력함을 인정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