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은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 (4)’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  그가 선해 보이는 일을 한다 할지라도 그 목적과 근원은 자기 만족이고 이는 결국 교만이다.  악인의 삶의 목적은 자기 자신이고 자기 만족이며, 또 그러한 목적에 집중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잘 살 수 있고 권력도 얻을 수 있다.

 

5절의 번역이 좀 헛갈리는데, ‘주의 심판은 높아서 그에게 미치지 못하오니’ 라는 부분은 ‘주의 심판은 그 시야 밖 높이 있으니’라고 해야 이해가 간다.  그가 아무리 힘있고 높고 견고한 위치에 있다 할지라도 그 시야는 한계가 있어서 그에게 닥칠 하나님의 심판을 볼 수 없다.

 

이렇게 악한 이들이 판을 칠 때 다윗은 충분히 무력으로 대항할 수 있었음에도 그 악한 이들에 대해 싸우거나 욕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아뢰고 주의 어떠하심과 권위를 상기한다. 

 

10편 전체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아뢰는 내용이지만 특히 12절 부터는  ‘오 주여, 일어나소서. 오 하나님이여, 주의 손을 드소서’ 라고 말하는데, 하늘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 하나님께 ‘일어나소서’ 라고 아뢴다.  또 ‘손을 드소서’ 라고 감히 명한다.  여호와께서 일어나시면 공의로 심판하셔서 모든 것이 평정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18절에는 마지막으로 ‘아비 없는 자와 압제당하는 자에게 공의를 행하셔서 땅의 사람이 다시는 압제하지 못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는데, 이러한 기도를 하다보면 ‘왕인 다윗이 이러한 것을 해야 하는 것 아니야?’ 라는 질문이 생긴다.  이 시편을 지을 때 다윗이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왕이라도 우선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에 따라 구했다.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을 먼저 인정하는 이는 그 삶 속에서 동일한 실행으로 살 수 있다.

 

주여, 이러한 악인이 제가 아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먼저 인정하는 하나님 사람 되게 하소서.  나와 정치적 색깔이 다르다고, 교리가 다르다고, 나의 기준과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먼저 주님 살아계심을 바라보게 하소서.  여러 가지 견해들 속에 휘말리지 않도록 주님을 앙망하며 주의 주권을 인정하게 하소다.  나를 다스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