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세상에 대해 비관적이다. 3절에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고백을 했을 때 그는 '세상이 왜 이렇게 악하지? 말세다' 라고 이상히 여기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았다. 세상에는 아름답게 보이는 것들도 많지만, 소위 '인간 세상'에 대해서는 바울도 주님도 모두 비관적이었고, 그래서 주님의 구속하심이 필요했다.
과연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요지에 배치됨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전에 ㅈ목사가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에 판검사가 수두룩하다고 말했을 때 왠지 좋게 들리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요즘 검사들의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본다. (물론 그 중에는 귀한 분들도 없지는 않다)
전 5:8는 기록한다.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니라". 또 요일 3:13은 말씀한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세상에 대해 주님께서는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세상이 왜 이리 악한지에 대해 이상히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세상에서 왜 우리는 환난을 당하지 않고 세상이 왜 우리를 미워하지 않는지 이상히 여겨야 한다. 주님의 복음으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구원하시는 주님, 주님 지으신 세상은 아직도 매우 아름다운 것들이 주님의 어떠하심을 드러내고 있지만, 인간 세상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함없이 추악할 것이고 결국 심판이 있을 것임을 압니다. 이러한 세상에 대해 한탄하는 것을 멈추고 우리에게 세상을 이기는 믿음 주심을 다시 한번 묵상합니다. 세상은 흔들리지만 오직 우리의 피난처는 주님의 보좌임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