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좋은 날’을 노래하지 않고 왜 ‘환난 날’을 말하고 있을까? ‘환난 날’은 앞으로 닥칠 ‘여호와의 큰 날 (습 1:14)’ 혹은 대환난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매일 하루 하루가 환난 날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절은 ‘응답하시고’ 라고 시작해서, 6절에 ‘응답하시리로다’ 또 마지막 9절 역시 ‘응답하소서’ 라고 끝을 맺는다. 환난 날이라도 주님께서 응답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만 있다면 더 이상 환난이 아니라 20편 전체의 모든 복을 누릴 수 있다.
창세기 16장에는 아브라함이 천연적인 생각으로 ‘하나님과 동역(?)’ 하려고 86세 때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는데, 그 후 99세까지 13년 동안 하나님의 음성이 없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이 세월은 ‘잃어버린 13년’이었다. 주님의 음성과 응답이 없던 진정 ‘환난 날’들 이었다.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죄 때문에 혹은 믿음을 성장시키시려고 주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을 경험한다. 이 때가 바로 환난날이 되는데, 믿음으로 더 나아가야 하지만, 많은 경우 아브라함 처럼 하나님께서 먼저 오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 17:1)” 주님의 ‘전능하심’을 다시 깨우쳐 주시고, 이에 따라 우리가 주님 앞에서 완전하기를 요구하신다.
주님,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나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나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나를 붙드시며,
나의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나의 번제를 받아 주시기를 원합니다
나의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주의 모든 계획을 내 삶 속에서 이루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의 승리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우리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어떠함에 휩쓸리지 않고, 비판하기 전 왕을 위해 진정 기도하게 하소서. 왕이 온전해서 그들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권위와 전능하심을 인정하기에 기도합니다. 그들이 주님 만나게 하여 주소서. 그들을 만나 주소서. 우리의 진정한 왕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