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흥미로운 시편이다.  어젯밤 ‘생명’에 대해 묵상을 했는데 오늘 말씀과 연관이 지어진다.  1절의 ‘구원’이라는 히브리 단어는 재미있게도 ‘예슈아’이다. 이 단어는 ‘야샤’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살려주다, 보호하다, 승리하다, 도와주다, 안전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생각해 보면 ‘구원’이라는 말을 다른 종교에서 하던가?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무엇인가?  오늘 말씀을 보니 ‘영원한 생명’과 연관된다.

 

해설에서 ‘복’을 뜻하는 히브리어 ‘베라카’는 ‘바락’이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바락’은 ‘무릎꿇다, 축복하다’ 의 의미다.  흥미롭게도 이 단어의 발음이 현재 미국 대통령 ‘바락 오바마’와 같다.  하지만 바락 오바마는 축복만은 아닌 것 같다.  아무튼 ‘무릎꿇다, 복을 빌다’ 라는 동사에서 온 명사형 ‘베라카’는 다시 6절에도 나오는데, 여기에 ‘영원’이라는 단어 ‘아드’가 함께 있다.  ‘아드’는 ‘계속해서’ 라는 의미인데, 이 단어가 4절 ‘영원한 장수’에도 쓰였다.  4절은 ‘그가 당신의 생명을 구하니 그에게 주셨다.  곧 계속되는 날들이다’ 라고 번역할 수 있다.  하나님의 생명은 영원하시기에 이 ‘계속되는 날들’이 주어진다. 

 

어제 밤 페북에 아래의 내용을 올렸었다.

 

『신앙 생활에서 여러 가지 기준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생명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우선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것 ( 6:69)' 이다. 믿을 때 알게 된다.

 

또 요일 5:12에는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말씀하는데, 이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시기에 그리스도를 소유하면 생명이 있음을 말씀한다.

 

그래서 나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사셔야 하는데 그 실천이 쉽지가 않다. 그것은 비밀이기 때문이다 (딤전 3:9, 12).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그 비밀이 조금 보인다.  즉 구원과 생명과 무릎 꿇음은 함께 간다는 것이다.  ‘베라카’는 ‘복’을 의미하지만 ‘무릎 꿇다’에서 온 것 처럼 무릎 꿇을 때 복이 임한다.  헬라어에서 ‘무릎 꿇다’는 ‘프로스쿠네오’인데, ‘앞으로’와 ‘키스하다’의 합성어이지만, 많은 경우 ‘무릎꿇어 경배하다’ 즉 ‘예배하다’로 번역되었다.  지존자 앞에서는 편하게 앉아서 예배할 수 없다.  계시록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을 영 안에서 다시 만난 요한은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주님 앞에 무릎 꿇을 때, 나는 주님을 예배하는 것이고, 주님은 당신의 생명을 주심으로 나를 온전히 구원하신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일상에서 나에게 구원을 주시고 생명을 흘러주시며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앞에 무릎 꿇는 하루 되기 원합니다.  무릎 꿇음으로 주를 높이고, 그 복을 누리기 원합니다.  주의 생명이 저를 주관하시기 원합니다.  나의 '예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