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시편에서는 자신의 젊은 시절의 죄와 현재의 죄과를 고백하며 여호와께 기억하지 말아달라고 간구하던 다윗이 오늘 시편에서는 자신이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다고 말한다.
‘완전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톰תֹּם’ 이라는 단어인데, ‘허물없음, 꽉 차있음, 완전한 분량, 결백함, 진실함’ 등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완전함’ 이라는 뜻은 좀 오해를 살 수가 있는데, 영어로 perfect 라기 보다는 full measure 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다. 마치 달란트 비유에서 칭찬 받은 종들은 각자 받은 달란트 수 만큼 남긴 것, 즉 자신의 능력의 한계와 신실함의 온전한 분량으로 충성한 것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다윗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을 온전히 주님 앞에 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절은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라고 구한다. 즉 자신의 온전함은 아직 여호와 앞에 완전(perfect)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아직은 연단이 필요하다.
6절에는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의 ‘무죄’는 ‘니카욘’이라는 단어로 ‘깨끗함, 결백함’을 의미하는데, 원어에서는 ‘결백함 안에 나의 손들을 씻겠습니다’로 되어 있다. 즉 이 ‘무죄함’이 자신의 무죄함이 아니라 ‘결백함’ 혹은 ‘정결함’ 가운데에 자신의 손을 씼겠다는 표현이다.
인생의 실존은 결국 죄의 문제가 되버렸는데, 완전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앙망하려는 자들에게는 항상 부딪히는 것이다. 다윗 역시 그의 평생에 시험받고, 다시 주 여호와께 나가서 죄 사하심을 경험하고, 그래도 또 다시 죄를 짓는 등 죄의 문제에서 자유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시편 32편 1절에서는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고백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다. 그 오심의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죄의 문제’에 대한 해결이었다. 그래서 주님 오심에 대한 천사의 예언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1:21)” 였다. 그런데 주님은 ‘자기 백성’ 뿐만 아니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요 1:29)’ 되셨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세상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어 주의 백성되고, 결국 그들의 죄에서 구원함 받는다. 또한 주님의 죄에 대한 해결은 ‘단번에’ 이루신 것이다 (롬 6:10, 히 7:27 9:12, 26, 28, 히 10:2, 10). 즉 주님의 단 한번 죽으심으로 세상의 모든 죄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의 요구를 해결하셨다.
그래서 주님을 믿으면 과거의 죄는 물론 현재 혹은 미래의 죄에 대한 문제도 이미 해결된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죄를 지어서 멸망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그 공로를 믿지 않기에, 인정하지 않기에, 자신의 그 죄과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심판과 정죄 아래 있게 되는 것이다 (요 16:9).
물론 미래의 죄까지 사함 받았다고 해서 죄 짓는 것을 가볍게 여기거나 맘대로 산다면 주님의 은혜를 잘 못 이해한 것이고 이에 대해 로마서는 '논리적'으로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고, 그 외 여러 성경에는 막중한 경고가 있다. 신앙 생활은 죄 사함 받은 생활이고 그에 대한 감사와 승리의 찬양의 생활이다. 하지만 가끔 미래에 저지를 죄에 대해 염려하게 되는데, 이것은 나의 연약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동시에 이것은 나의 능력 밖의 문제임을 깨닫는다. 구하신 분도 주님이시니 이에 대한 해답 역시 주님이시다.
주님, 단번에 죄의 문제를 해결하심을 감사합니다. 나의 실존적인 면에서는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탄식할 때가 너무도 많지만, 그래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 보다는 먼저 주님 안에 거하고 그 은혜를 구하며 ‘주의 제단에 두루 다니며 감사의 소리를 들려주고 주의 기이한 일을 말하(6,7절)'는 것, 그리고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르는 곳을 사랑하 (8절)’는 것에 더 마음을 두는 것이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주님, 오늘 주님 안에 거하기 원합니다. 저를 멀리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로 보아 주심을 믿고 나아갑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