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죄 역시 정의되지 않고 결과적으로 죄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죄의 문제의 핵심은 악한 행동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 먼저 하나님께 자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죄라도 그에 대한 정죄함은 우선 하나님으로부터 이기에 먼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한다.  물론 제대로 용서를 받은 사람은 죄를 지은 상대인 사람에게도 용서를 구한다.

 

다윗은 1절에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말하는데, 구약에서 죄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은 ‘가려지는 것’이었다.  즉 죄나 죄과를 ‘없애’지는 못했다.  5절은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라고 말하는데, 원어로는 ‘곧’이라는 말이 없고,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의 부분도 ‘당신은 내 죄의 악 (guilt)을 용서하셨습니다’ 로 되어 있다.

 

죄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영어로는 sin  그 복수격인  sins 이다.  헬라어 역시 마찬가지로 단수와 복수로 나뉜다.  단수 sin은 특히 로마서 5장에 많이 등장하는데, 의인화된 ‘죄’로서 ‘죄들’을 낳게 하는 ‘죄성’으로 이해할 수 있고, 아담에 의해 처음으로 세상에 들어온 것이다 ( 5:12).

 

시편에서 다윗이 경험할 수 있는 은혜는 죄가 '가려지는’ 것이었지만 로마서 11:27에는 이사야 27:9를 인용하며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즉 아예 죄를 ‘없이 하는 take away’ 것에 대해 말씀한다.  구약의 제사에 대해 히브리서는 10:4에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11절에는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즉 구약의 죄에 대한 해결은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을 말씀한다.  그렇지만 요일 3:5에서는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고 말씀한다.  즉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는 것만 아니라, 그 죄의 본질과 본성 그리고 기질인 ‘죄’까지 ‘없애심’을 말씀한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죄 역시 정의되지 않고 결과적으로 죄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죄를 없이 하셨고,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 양이 되셨기에, 이제는 누구도 죄에 대해 정죄할 수 없다.  다만 주님을 믿지 않고 말씀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그에 대해 죄가 되고, 이미 정죄된 것임을 말씀한다( 16:9, 딤전 5:12, 16:16).

 

주님, 세상에서 육신으로 살면서 죄에 대해 온전한 해방을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임을 압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이미 죄를 없이 하셨기에 그 진리를, 믿음으로 붙잡기 원합니다.  아직도 나의 죄성은 분명 존재하며 나를 괴롭게 하지만 성령께서 힘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과 정체성이 온전히 설 때 주님과 함께 나는 죄와는 상관없는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내가 자백할 때 나의 죄를 가려주시고 사해주시고 없애 주소서.  주님만이, 주님의 보혈만이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죄인된 사람이 아니라 이제 주를 믿고 의롭게 된 의인으로서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하기 원합니다.  마음이 정직한 이들이 함께 모여 즐거이 외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