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하며 합당한 것임을 밝힌다.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은 물론이지만, 롬 1:20말씀 처럼 소위 ‘자연’이라는 하나님의 창조물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한다.
6절은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라고 하나님의 창조를 언급하는데, 요즘 물리학에서 말하는 소위 ‘초끈이론 (string theory)’을 연상시킨다. 빅뱅 이론에 여러 헛점이 발견되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러한 이론을 고안하게 됐는데, 우주가 만들어질 때 물질들이 빛보다 빠르게 확산 되기 위해 결국 끈의 진동 처럼 공간을 초월한 속도의 개념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맞게 이해했다면). 그런데 잘 들어보면 결국 ‘주파수 혹은 진동 frequency’ 즉 음성, 즉 ‘여호와의 말씀’ 이 만물을 존재하게 만들었다는 것으로 들린다. (물론 초끈이론 역시 물리학적으로 도전 받는 문제들이 있다고는 한다.)
7절은 ‘그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라고 말씀하는데, 평생 이스라엘과 그 인근을 떠나본 적이 없는 다윗은 이러한 내용을 어떻게 선포했을까? 아마도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 받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구전으로 내려온 하나님의 창조를 말했을 수도 있다.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은 것은 아무래도 극지방과 그 인근의 빙하를 말하는 것 같은데, 액체인 물을 무더기 같이 쌓을 수 있는 방법은 얼음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빙하에 소금기가 없다는 것이다. 만일 바닷물이 모여 얼어서 쌓였다면 소금기가 있어야 할텐데 빙하에는 소금기가 없다. 바닷물 표면이 얼은 해빙 (바다얼음)은 소금기가 매우 적은데, 바닷물이 천천히 어는 동안 소금기를 밀어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의 구절은 과학적으로 틀린 말이 될까? 찾아보니 지질학자들은 물론이고 창조과학자들 역시 빙하는 바닷물이 아니라 눈이 내리며 쌓아 만들어졌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바람’이라는 변수를 잊은 것 같다. 창세기 8:1 에는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후에 2절과 3절은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라고 기록하고 계속해서 물이 줄어드는 것을 말씀한다. 즉 바닷물이 다른 곳에서 계속 쌓이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노아의 홍수로 지구의 기후가 격변했고 그것은 결국 그때까지는 없었던 ‘바람’이 생기게 한다. 이 ‘바람’은 그냥 보통 바람이 아니라 장소에 따라 상상할 수 없는 강풍일 수도 있다. 즉 극지방에서는 바닷물이 휘몰아쳐 얼음 알갱이가 되어 빙하를 생성했을 것이다. 바람이 바닷물을 냉각하는 과정에서 소금기는 떨어져 버리고 순수한 물로 얼음 알갱이가 되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전부 내 개인적인 생각임)
7절은 ‘그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라는 구절도 있지만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즉 창세기 8장 2절의 ‘깊음의 샘’과 연관지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깊은 물은 태평양 같은 대양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지구 표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땅 속의 ‘큰 물’일 수도 있다.
요즘 사막을 녹지대로 만드는 사업에 대한 관심이 크다. 중동 여러 국가에서 사활이 걸린 문제로 추진하고 있는 담수화 (바닷물을 민물로 만드는) 사업은 사실 많은 사막에 물이 넘쳐 흐르게 했다. 앞으로 그들의 자원인 석유가 고갈되면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것을 알고 있기에 담수화 사업에 목숨을 걸만하다. 특히 한국의 기업들이 거대한 담수화 기계를 만들어 현지에 설치하여 성공리에 가동 중에 있다고 하는데, 현재 담수화 공정에는 소위 ‘역삼투방식’이 많이 쓰인다. 비용 감소면에서 계속 개선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꽤 돈이 들어간다. 오늘 말씀에 입각해서 냉각 바람을 사용하는 담수화는 어떨까? 기술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한번 연구해봄직도 하다.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위대한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 되신다. 22절은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라고 아뢰는데, 우리 아버지 되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바라는 것 이상 우리에게 베푸신다. 다만 그것을 우리는 잘 모를 뿐이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를 힘써 알자 (호 6:3)’ 라고 말하며, 다만 우리가 우리의 바람대로 여호와께 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엡 3:16)’ 라고 구하게 한다.
주님, 조금만 일이 예상대로 되지 않아도 좌절하고 상처입는 저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위대하심과 그 인자하심에 눈을 돌립니다. 나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는 주님의 성령을 의지합니다. 주님의 영광의 풍성함이 어떠한 것인지 더 알고 배우는 하루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