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점심 시간과 스낵시간에 전도를 했다.  그 때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보이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기본적인 입장은 하나님의 은혜를 어떤 면에서 ‘사탕발림’식으로 전했던 것 같다.  즉 ‘우선 영접 기도만 하고 교회만 나와라.  설교를 듣고 말씀을 배우다 보면 깨닫게 되고 변하게 될 것이다’라는 근거 없는 기대와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누구든 모두 용납하신다는 주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칭찬하고 어떤 면으로 ‘꾀이고 낚아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 비스무리하게 전도를 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복음’을 듣고 난 아이들에게 변화가 없었다.  물론 각 가정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전해진 복음이 온전한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있었지만, 전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복음의 능력을 의심했던 것 같다.  주님께서는 복음이 전파될 때 자신의 모든 것을 ‘허비’한 마리아의 얘기를 함께 전하라고 하셨는데, 내가 들었던 복음은 ‘약간의 투자’를 통해 ‘천당’이라는 막대한 이익을 얻는 그런 이기적인 모습이었고, 나도 또 그렇게 전했던 것 같다. 

 

야고보와 같이 예수님의 육신적 동생인 유다는 자신을 예수님의 종이라고 말한다야고보는 흩어진 열 두 지파, 즉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썼지만 유다는 은혜로 구원얻은 모든 이들에게 썼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이들은 동시에 예수 이름으로 장사하는 이들이다.  예수 이름으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 거룩하게 보이게 하려는 것도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받은 구원은 common salvation, 원어로 ‘코이노스 (일반적)’ 즉 ‘함께 공유하는, 일반적인’ 이라는 뜻으로 킹제임스에서는 ‘common (7), unclean (1), defiled (1), unholy (1)’ 등의 뜻으로 번역되었다.  즉 모두가 보편적으로 받았다는 뜻인데, 문제는 애굽에서 망한 백성들과 타락한 천사 등을 예로 들며 이런 보편적인 구원을 받은 이들도 힘써 지키지 않으면 멸망당할 수 있음을 말한다.  한번 은혜로 구원 얻으면 결코 구원을 빼앗길 수 없지만, 그것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관점이고, 그래서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것이지만, 앞을 알 수 없는 인간의 관점으로는 구원을 잃을 수도 있음을 본다.  그래서 배교 하는 이들도 본다.  그들은 아마도 원래 구원받지 못한 것이겠다.  주님께서도 마태복음 22장에서 모든 이들을 초청했지만 예복을 입지 않은 이들을 내치신 비유를 하신 것을 보면 이해가 된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받는 구원을 귀히 여기지 않을 때 멸망할 수 있다. 한번 믿으면 어떻게 살든 죽으면 천당간다는 말은 거짓이다.

 

주님, 은혜로 받은 구원이라면, 정말 은혜였다면 귀히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받은 복음을 돌아보게 하시고 그 큰 복음을 힘써 지키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