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의 절기 중 ‘욤 키푸르’가 있다. ‘속죄의 날’을 의미하는데, 유대력으로는 7월 10일, 우리 달력으로는 보통 9월 혹은 10월에 온다. 여기에서 ‘욤’은 문자적으로 매우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보통 ‘날’을 의미하는데, 오늘 말씀 범위에 그의 변형이 세번 나온다. 13절 ‘그(악인)의 날’, 18절의 ‘온전한 자(들)의 날(들)’, 그리고 19절 ‘기근의 날(들)’ 등이다. 또 환난의 ‘때’ 라는 말도 등장한다. 모두 시기를 나타내는 단어다.
악인에게는 ‘그(들)의 날(단수)이 다가오’는데 (13절), 결국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바로 그 날이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말이, 마치 믿지 않는 것에 대한 벌로 생각되어 너무 편협적이고 외골수처럼 들릴 수 있지만, 결국 모든 죄인들은 사망을 피할 수 없다. 물론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예수님의 단번의 구속하심으로 이제는 더 이상 죄 자체 때문에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지 않는 것 자체가 죄임을 말씀한다 (요 16:9).
이 문제에 대해 롬 5:14은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고 말씀하는데, ‘정죄하는’ 모세의 율법이 있기 전부터도 사람이 죽을 수 밖에 없었음을 말씀하고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신 둘째 사람 예수님을 비교한다. 그래서 다가오는 그 날이 있는 악인은 예수님을 믿어서 그의 생명으로 거듭나고,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하며, 그 악함에서 구원받고, 영원하신 생명을 선물 받아 주님의 부활 생명을 누리는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
악인의 날과는 반대로 18절에는 ‘온전한 자(들)의 날(들, 복수)’이 있고 그들의 기업은 '영원'함을 말씀한다. 생명의 삶 해설에서는 ‘하나님은 악인의 악행을 보시며 심판의 날을 계수하십니다’ 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악인에 대해 사망의 날들을 카운트 다운하시며 계수하시지만, 의인에 대해서는 그 삶 가운데 주님과 동행한 날들을 계수하신다.
성경에는 일반적인 시간 즉 역사적인 연수와는 다르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시간들에 대한 개념이 있음을 종종 엿볼 수 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고 13년 동안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긴 것은 그의 삶에서 13년이라는 세월에 구멍이 뚫린 셈이다. 즉 그의 나이가 연수로는 100세 였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나이는 그 보다 적을 수 있음을 말씀한다.
왕상 6:1에는 ‘이스라엘이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사백 팔십년이요..’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 시간은 더해보면 573년이었지만, 이방민족의 지배아래 있던 93년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 며칠 있으면 한국 나이로 반백이 되는데, 빨리도 지나간 그 날들 날들 중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날들은 며칠이나 될까?
주님, 오늘 이 시간에 주의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고 그 은혜를 형제 자매들에게 흘러보내며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하나님 앞에 계수되는 날 되게 하소서. 가끔 넘어지기는 하지만 아주 엎드러지지 않도록 주님 손으로 붙드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넘어진 형제 자매들을 다시 일으키시고 주님의 영으로 충만케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