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가끔 우리로 기다리는 사역을 하게 하신다. 항상 일이 많고 바쁘고 또 그에 따른 합당한 결과가 있다면 보람도 있고 성취감도 있겠지만, 우리의 삶 자체는 물론이고 ‘사역’을 포함한 영적인 것들에 대해 ‘일을 하는 것’ 보다 기다리게 하실 때도 있다. 그런데 이 기다리는 것 역시 일, 곧 사역이 된다.
다윗은 1절에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라고 하는데, 한번 기다린 것이 아니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긴 기다림은 인내를 요구한다.
기다림 안으로 들어갈 때 (혹은 들여 보내질 때) 나의 마음의 진정한 소원과 숨긴 것이 하나씩 드러난다. 주님 외에 내가 추구했던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으로 위로를 삼고 혹은 무엇으로 기쁨을 얻으려 했는지, 나의 마음이 온전히 여호와 앞에 순결한지 한꺼풀씩 벗겨진다.
교회의 여러 가지 사역이나 혹은 가정에서 아이들 교육 등 시간이 걸리는 것들이 있다. 교회 사역들 중 많은 것들 예를 들어 선교나 전도 특히 교육부 사역 등에 대해 세상 기업들 처럼 ‘전략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전력질주’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쁜 것은 아니겠고 사실 그러한 방법으로 한국 교회는 많은 ‘성장’을 이루었겠지만, 그 가운데 기다림이라는 사역이 있다는 것은 간과했다.
기다림이 필요한 것은 생명은 매우 더디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메바같은 하등생물에 비해 고등생물의 성장은 더욱 시간이 걸리고, 동물들의 성장에 비해 인간의 성장은 훨씬 더 긴 시간을 요구한다. 하물며 하나님의 생명이 인간 안에서 자라는 것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겠는가? 아마도 그래서 우리에게 영원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닮아가고 그를 누리는 것은 영원히 해도 다할 수 없을만큼 그 분은 부요하시다.
기다림에는 그 결과가 있는데,
1. 응답을 얻는다 –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신다 (2절)
2. 새 노래를 부른다 (3절) –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시는데, 이 새 노래는 시간적으로 새 것이라기 보다는 새롭게 경험한 것을 의미한다. 자주 불렀던 찬송이라도 어느 순간 나에게 새롭게 다가올 때가 있는데, 이는 새롭게 주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3. 여호와의 기적과 생각의 무한하심을 경험한다. (5절) – ‘누림’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서 오지 않고 ‘관계’에서 온다. 주님께서 내 삶 속에 행하신 것이 많음을 깨닫는 것은 기다리며 뒤돌아볼 때 비로소 보인다.
4.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 (6절) – ‘제사’와 ‘예물’ 그리고 ‘번제와 속죄제’ 등은 모두 영적인 것이지만 그 보다 더욱 영적인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기다림을 통해 종교적인 행위를 넘어 하나님과의 (혹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의 중요성을 배우게 된다.
5. 회중 가운데 기쁜 소식을 전한다. (9, 10절) – 전에는 ‘개인적인’ 믿음의 성장이 중요했다면, 기다림의 사역을 통과할 때 공동체적 성장에 대한 시야가 열린다.
주님, 다윗이 고백했던 이 시편이 오늘 믿음의 형제 자매들의 고백이 되게 하소서. 기다릴 때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이 답답하지만, 오히려 주님은 더 가까이 계심을 배웁니다. 나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고, 우리 안에 주의 뜻을 이루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