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에는 주일 예배가 있어서 보통 큐티 나눔도 건너뛰고 큐티도 하지 않을 때가 많지만 오늘은 새해 첫날이고 또 새롭게 디모데 전서를 시작해서 어제 송구영신 예배를 참석하고 주일 예배 가기전에 잠간 묵상을 한다.
전에 아직 청년이었을 때 성경의 여러 인물들 중에 내가 identify할만한 인물이 누가 있을까 생각하던 중 디모데가 다가왔다. 나 자신을 보면 아브라함도 아닌 것 같고, 모세 역시 아니며 예수님은 더더욱 아니고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도 먼 것 같이 느껴지고 예수님의 여러 제자들 역시 그런 느낌이었다.
신약에 다크호스 처럼 갑자기 등장한 인물인 바울과 그의 신학에 매료는 됐었고, 또 바울같은 이를 사도로 부르신 그리스도의 은혜에 놀라지만 바울 역시 범접할 수 없는 인물로 느껴졌다. 그러다가 젊은 디모데가 등장했다.
그런데 이제 디모데가 되기는 나이가 너무 들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육적인 나이는 디모데가 아닐지라도 아직은 영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온전히 성숙하지 못한 나를 보며 디모데와 다시 만남을 갖는다.
새해부터 디모데 전서를 시작한 것에 약간 부담을 느끼는데, 바울은 디모데에게 순결하고 깊은 신앙 생활을 요구하며 믿음의 본을 보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더우기 1장부터 그 내용이 다소 무겁다.
1-2절은 우리말 순서가 원어와는 어감이 다르다. 우리말 번역에는 '바울'이라는 이름이 제일 나중에 오지만 원어는 영어와 비슷하다. 원어를 우리말 순으로 놓자면:
1절: 바울 사도(된) 예수 그리스도(의) ~따라 명(에) 하나님 구원자(된) 우리(의 ) 그리고 주의 예수 그리스도 그 소망 우리(의)
2절: 디모데(에게) 진짜 자녀 ~안 믿음 은혜 긍휼 평강 ~로부터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그 주 우리(의)
순으로 된다. 내용은 같지만 어감이 조금 다르다.
바울은 사도 즉 보내심을 받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이고, 우리 구원자 하나님의 명과 우리의 그 소망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에 따라 사도가 되었다. 그가 바리새 학파의 분파인 가말리엘에게서 공부했던 학력배경이나 그 외 다른 사도들과의 교제 혹은 그들에 의한 인정함 (벧후 3:15) 등으로 자신의 사도됨을 주장하지 않고 (물론 이러한 것들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문제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자 하나님의 명하심으로 되었음을 고백한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바울은 디모데를 '진짜 아들 genuine child'라고 부르는데, 딤후 2:1에는 '내 아들아'라고 다정다감하게 부르지만, 여기에서는 '내 아들'이 아니라 '진짜 아들'이라고 부른다. 즉 전도 혹은 양육에 의해서는 바울의 수고로 디모데가 바울의 아들이 되었지만, 영적으로 디모데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동일한 형제로서 결코 디모데 "밑에 있는" 젊은이가 아니다. 사역에 있어 동역자이다.
사역에 있어 동역자이기에 젊은 디모데에게는 다소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부탁을 하는데, 3-4절은 '선한 싸움 (18절)'을 요구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는 유대교적인 특성이기는 하지만 오늘 이방인 우리들 특히 한국인들 중 우리 조상이 유대인 혹은 히브리인이었다는둥 여러 말이 많다. 혹은 정통이니 이단이니 말이 많다. 이러한 것은 '변론을 내는 것' 즉 말싸움 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이다.
이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따르는 것 즉 이 교훈에는 목적 (혹은 완성)이 있는데,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 (5절)' 이다. 원어에서는 '청결한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 그리고 선한 양심 그리고 거짓없는 믿음 (혹은 사랑이 모든 것의 목적) 인데, 공동체 안에서 사랑은 이해관계에 얽히거나 무언가를 바라는 것에서 나오지 말아야 하고 사랑하나면 충분하다. 이러한 세 가지가 우리 공동체 안에 있는가? 물론 이것은 목적과 완성이고 아직은 여정 중이다.
6절부터는 율법을 말하는데, 율법은 거룩하지만 그 대상은 죄인들이다. 즉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 (9-10절)' 등은 분명 죄인들이고 죄들이다.
하지만 '이 교훈'은 그러한 것들에게서 해방되고 초월한 거룩한 백성들, 거룩한 공동체를 위한 것으로서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른 (11절) 것이다.
주님, 새해 아침에 공동체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이를 위해 일을 맡기고 동역하는 아름다운 사역을 봅니다. 주후 2017년이 어떤 한 해가 될지 모르지만 믿음으로 승리하고 사랑을 결실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주 앞에 잘했다 칭찬받는 연도가 되게 하소서. 주의 종들이 허탄한 것에서 벗어나 복음과 그 교훈에 집중하도록 성령으로 인도하소서. 주께만 영광 돌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