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절: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원어에서는 1절과 2절에 '그리스도 예수'가 '예수 그리스도'로 되어 있다. 그러다가 12절에서 그 순서가 바뀌어 15절까지 '그리스도 예수'로 나온다. 바울은 1,2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반적인 명칭을 사용하다가 12절에서는 예수님의 '그리스도'이심을 더 부각시킨다. 그 이유는 19-20절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한 이들 즉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기 때문이다. 문맥상 이들은 크리스천의 기본 신앙인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여 '신성을 모독'한 이들 같다.
'능하게 하다'는 단어는 '능력' 즉 '두나미스 - 엔두나모산티'이다. 주님은 바울을 enable하셨고, empower하셨으며, encourage하셨다.
'충성되다'의 원어는 '믿음'과 동일한 단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종 바울을 믿으셨다. 하지만 '여겨'라는 단어가 있는데, 원어로는 '헤게오마이'로 '이끌다, 앞에 가다, 인도하다, 다스리다, 여기다, 생각하다'등의 의미가 있다. 바울은 자신이 주님께 충성했지만 그 충성함에 대해 교만하지 않고 주님께서 자신을 믿어주신 것으로 알고 감사했다. 그 이유는 다음 절에 나온다.
13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바울은 체면 깎일 수 있는 이런 내용을 쓰고 있다. 좀 과장한다면 '내가 전에는 (영적) 깡패였었다. 내 주먹 (위치, 교권, 교세)만 믿고, 잔머리만 굴리고 있었지.'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들이나 '아랫사람'에게 과거 자신의 과오나 숨기고 싶은 모습을 말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 고백했던 것 처럼 디모데에게도 과거 자신의 어떠함을 고백하고 있다. 영적 아비로서 권위가 깎일 수 있는 문제지만 바울은 자신의 권위보다는 주님을 높이는 것이 주의 종으로서 당연함을 알았다. 그는 진정 '긍휼을 입은' 자였다.
14-15절: 그래서 바울은 계속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를 찬양하고 주의 구원하심을 높인다. 동시에 자신은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한다. 디모데는 이런 서신을 읽고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사도로서 그의 권위를 무시했을까? 오히려 주님을 높이는 그를 보고 감사했고 오히려 위로부터 주신 바울의 권위를 인정했을 것이다.
16절: 바울은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높인다. 바울의 과거는 나중에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어서 그 어떤 죄인들도 주님의 긍휼을 받을 수 있음을 선포한다. (여기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이다.)
17절: 원어에는 '이제 시대들의 왕, 썩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아니하시고,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시대들의 시대들 안으로 (있을지어다). 아멘.' 으로 되어있다. 1-2절에 바울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함께 언급했는데, 17절에는 갑자기 '하나님'을 찬양한다. 바울은 보통 쓰지 않던 말을 하는데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이라는 말을 한다. 다른 바울 서신에서는 이러한 구절을 찾아볼 수 없는데, 유다서 1:25에서 동일한 구절이 발견된다. 유다는 야고보와 함께 예수님의 육적인 동생인데, 어릴 때부터 같이 예수님과 자라며 예수님의 모든 것을 바로 앞에서 항상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바울처럼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한다 (유 1:1). 또 1:4절에는 '유일하신 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기록한다.
참된 주의 종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따로 보지 않았다. 하나님 아버지께로 오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시기에, 하나님과 예수님은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너무도 중요한 것이기에 바울은 '전에 너에게 주어진 예언들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라 (18절)고 부탁한다. 유일하게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지혜의 결정체는 그리스도시다. 어이없게 성육신 하시고, 어이없게 십자가에 죽으시고 놀랍게 부활하신 그리스도시다. 그래서 이러한 싸움을 하는 것이 '믿음과 선한 양심을 붙'드는 (19절)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믿음과 선한 양심을 떠나면 그 결과는 신앙의 파선이다.
주님, 바울이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더라도 높이고 지키려 했던 주님의 신성을 더 알기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참 하나님 되심(혹은 이심)을 더 보기 원합니다. 영적 권위는 내가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권위 아래 순복할 때 주의 능력으로 주어지는 것임을 배웁니다. 주께서만 나의 권위를 세우소서. 내가 더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변화함으로 내 안에 주님의 권위가 서시기 원합니다. 저는 바울처럼 충성되지도 못했지만 주의 긍휼하심이 저를 믿어주심을 봅니다. 육신의 아비들은 그 자녀들을 미덥지 않게 볼 때가 많지만, 주님은 우리 안에 소망을 두셨습니다. 저도 주께서 주신 제 자녀들 안에서 주님의 소망을 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