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5절에는 누가복음의 주인공이 마치 사가랴인 것 처럼 시작한다. 하지만 59절부터는 사가랴는 ‘그의 아버지’로 엘리사벳은 ‘그의 어머니’로 주인공이 바뀐다. 오늘 말씀 역시 67절은 ‘그 부친 사가랴’로 시작한다. 주인공이 바뀌었다. 79절까지는 전부 사가랴가 말한 내용이지만, 모든 것은 ‘이 아이 (76절)’로 촛점이 맞춰진다.
사가랴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 (프로뻬튜오-앞으로+말하다) 했는데,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구속하심 (68절)과 구원하심(69절)을 찬양했고,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 (70절, 원어는 복수)의 선포가 이루어짐을 말한다. 또한 ‘이 아이’가 온 목적에 대해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는 것임을 말한다 (77절)’. 즉 이 아이 역시 주인공이 아님을 암시하는데, 그가 온 것은 ‘구원의 지식을 주기 위함 (원어)’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직접 죄에서 구원하신다 (마 1:21).
78절은 ‘하나님의 긍휼’을 말하는데, 바로 요한의 이름과 관련이 있다. 요한이 온 것은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인데, 그 긍휼의 본질과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재미있는 것은 사가랴가 자신의 아들에 대해 ‘내 아들아’라고 하지 않고 ‘이 아이’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원어에는 ‘너 애기야 (수 파이디온)’ 인데, 자신의 아들에게 ‘내 아들아’ 라고 하지 않은 것은 요한에 대해 개인적인 바램이나 욕심을 내려놓은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부모로서 자식들을 잘 양육해야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들을 통해 자신의 개인적인 바램을 이루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사가랴는 요한이 빈 들에 있어도 개의치 않았다 (80절).
주님, 시대는 바뀌었고 주인공도 바뀌었음을 봅니다. 옛것을 붙잡으려하지 말게 하시고, 옛적 선지자들이 계속 말해온 핵심이신 그리스도를 붙잡게 하소서. 믿음 주소서. 자식도 나의 소유가 아님을 인정합니다. 주께서 주의 필요를 위해 양육하시고 써 주소서. 삶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고 주님이심을 더 깊이 알고 삶의 중심으로 모실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