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택스 시즌이 시작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세금을 내는 것은 변함이 없다.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으로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호적은 세금을 걷기 위한 것인데, 이러한 세상적인 행정을 통해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오게 되고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이 ‘빵집’이라는 이름의 마을에서 태어나신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이루시기 위해 세상의 현장을 사용하신다. 어쩔 수 없어 보이는 상황이라도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안배하심이 있음을 만질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의 탄생에 대해 마태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거대한 여행단에 대해 기록한 반면 누가는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마태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주권자들이 와서 경배해야 할 유대인의 왕이시지만, 누가에 의하면 일반 백성 안에 성육신하신 완전하고 온전하신 사람이시다.
그런데 목자들은 왜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켰을까? 보통 밤에는 양떼를 우리 안에 넣어두고 목자들도 쉬어야 할텐데, 기온도 떨어진 광야에서 밤에 양떼를 지키고 있다 (이때는 겨울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겨울이었다면 목자들부터 얼어죽었을 듯). 아마도 목초지를 찾아 헤매다가 양 우리와는 멀어졌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변변한 양 우리 조차 제대로 없던 가난한 목자들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 들었을 시간에 낮에는 자신의 양들을 먹이고 밤에는 그들을 지키던 신실한 목자들에게만 천사들이 나타나 기쁜 소식을 전한다. 주님의 재림은 나팔 소리로 시작한다고 말씀하는데 (마 24:31), 주님의 초림을 보면 아마도 신실하게 밤낮으로 양떼를 먹이고 지키는 목자들에게 먼저 그 나팔 소리가 들리게 될 것 같다.
목자들은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했는데 (9절), 주의 영광이 비추는 것 자체가 놀랍고 두려워 할만한 일이지만, 그러한 경험은 왕들이나 제사장같은 이들에게 임하는 것으로 여겼지, 자신들같이 천한 이들에게 임하는 것에 대해 어리둥절 했을 것이다. 자신의 일이 하찮게 보여도 충성되게 섬기는 이들에게 주님은 그 영광을 나타내신다.
천사들은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고 말하는데, ‘좋은 소식’이 바로 ‘복음’으로 많이 번역된 ‘유앙겔리온’의 동사형이다. 즉 ‘복음’은 문자 그대로 ‘좋은 소식’을 의미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복음이 ‘온 백성에게 미치는’ 큰 기쁨의 어떤 것이라고 말한다. 보통 ‘사람’을 의미하는 ‘안뜨로포스’는 14절에 나오지만, 10절의 ‘백성’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인 ‘평민’을 의미하는 ‘라오스’이고, ‘모든' 백성 이라고 말한다.
이 좋은 소식이 바로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말하는데, 그리도 기다려왔던 메시야가 드디어 오셨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이 ‘좋은 소식’이 사실 어떤 이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거나 아니면 아예 좋지 않은 소식일지도 모른다. 메시야를 원하지 않고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지키기 원하는 이들, 메시야에게 그 합당한 자리를 내어드리기 원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좋은 소식은 커녕 불쾌하고 위험한 소식일 수 있다. 그래서 그리도 역사적으로 복음은 핍박을 받아왔다. ‘백성’ 혹은 ‘평민’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속하심이 주권자들에게는 위협이요 미울 수 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나에게 복음은 정말 기쁜 소식인가?
그렇기에 갑자기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며 말한 내용이 ‘"가장 높으신 하나님 안에 영광 그리고 땅 위에는 기뻐(하는) 사람들 안에 평화 (원어)"라고 했다.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아니라 ‘주의 오심을 기뻐하는’ 혹은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가 된다.
주님, 주의 오심에 대해 기뻐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오히려 주님을 거부하며 죽이려고 했던 이들도 많았음을 압니다. 이 기쁜 소식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라오스’의 위치로 내려가기 원합니다. 사실, ‘라오스’ 이전에 죄에 찌든 소망없는 사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주의 오심을 기뻐합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낙담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충성하는 사람 되기 원합니다. 주여 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