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왕국을 전파하려면 능력과 권위가 필요하다. 그래서 주님은 열 두 제자들에게 능력과 권위를 주셨다. 어떻게 주셨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그들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쳤다 (6절).
그런데 이런 능력과 권위를 주신 것은 생각해 보면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나 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까지 이 후로는 제자들이 주님을 대신해서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10장에서는 '따로 칠십 인을 세우'셔서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 씩 앞서 보내'셨는데, 그 후로는 이러한 보내심도 더 이상 없다.
사도행전에 와서야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또 승천하신 후에 성령께서 오시자 '권능을 받고 ... 증인이' 될 것을 말씀하신다. 성령이 오신 후 받은 권능은 주님께서 이 때 주신 능력과 권위와는 다른 것일까? 문자적으로는 '두나미스'로 같은 능력이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능력과 권위를 주신 것에 연이어 헤롯이 당황하는 내용이 있다. 분봉왕이면 그리 높은 지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 지역을 마음대로 다스리는 왕인데, 헤롯은 당황하며 걱정한다.
이 두가지 내용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제자들은 주님께로부터 영적 능력과 권위를 받았고, 헤롯 역시 이미 정치적 권력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들 모두 성숙함이 부족했다. 제자들은 능력과 권위는 받았지만, 정작 54절에는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라는 철없는 소리를 한다.
철없는 이들, 성숙하지 못한 이들에게 능력과 권위가 주어지는 것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 제자들이 받은 능력과 권위가 제한적인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주님께 '불을 명하여~' 라는 것에 대해 여쭤보아서 다행이다. 멋대로 그 받은 능력을 가지고 '불아 내려서 그들을 멸하라!' 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구원은 성품과 관계가 있다. 구원이 성품의 변화만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성품의 변화는 구원의 매우 큰 부분이다. 세상에서 소위 '철드는 것'과 다른 것이 있다면 도덕적이나 종교적인 어떠한 것이 그 근원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라는 점이다. 참된 성숙은 생명에서 온다. 능력과 권위도 주님의 사역을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그 보다 우선 하는 것은 생명의 충만에서 오는 성품의 성숙이다.
성숙은 생명이 근원이지만 그 과정은 고난 혹은 고생이라는 것을 통해서 온다. 삶 속에서 고난이나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성숙은 없다. 그래서 고난에 유익이 있다.
주님, 재미있고 짜릿한 것만을 추구하는 이 세대에서 생명의 성숙을 추구하기란 쉽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은 우리를 가끔 고난 속으로 몰아 내시지만, 그것이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기회가 됨을 간과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 고난을 통해 우리 믿음을 시험하소서. 우리 믿음을 드러내소서. 주님을 더 붙들게 하소서. 주의 생명으로 성숙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