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유명한 오병이어 이야기와 주님께서 자신에 대해 물으실 때 베드로의 대답이다. 많은 교훈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이 둘을 함께 놓고 묵상해 보니 위와 같은 제목이 나온다.

주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은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행하신 비슷한 칠병이어를 제외하고는 그러한 기적을 자주 행하지 않으셨는데, 그 이유는 요 6:3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 그리고 이어서 35절에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로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라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수동태, justified, 예전 나눔에서 '칭의' '득의' 보다는 '의화' 혹은 '정의(의를 정함)'로 명명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오직 믿음으로 의한 것이지만, 그 후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데, 이는 우리의 노력이나 힘이 아닌 동일한 은혜로 가능하지만, 그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생명을 취하고 공급 받는 것에 있다.

주님은 분명히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육신의 필요를 채워주셨지만, 본래의 목적은 참된 생명의 양식 되시는 당신 자신을 계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라고 대답하자 곧이어 주님은 '...인자가...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날 것을 말씀한다 (22). 주님의 죽으심은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한 죽으심이고, 주님의 다시 사심은 우리의 의를 위한 것인데 ( 4:25),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고전 15:45에는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말씀하며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께서는 살리는 영, 즉 우리 믿는 이들을 살리고 계시는 (현재형) 영이 (안으로) 되셨음을 밝힌다.

'살려주는'의 원어는 '조오포이오운, 원형 ζοποιω'인데, '살아있는 존재'를 의미하는 '조온' '만들다, 야기하다, 생산하다, 행하다' 등의 의미인 '포이에오'의 합성어이다.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의 원어는 '첫 사람 아담은 살아있는 혼(푸쑤켄)이 되었다'인데, '되었다'의 시제는 아오리스트이다. 첫 사람 아담은 천지창조의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으므로 그 '된 것'은 과거지만 아오리스트 시제를 쓰는데, 이것은 뒤 '마지막 아담' '살리고 계시는 (현재형) 영 되심'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즉 주님께서는 분명 시간 안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지만, 시간을 초월해서 그는 언제나 살리고 계시는 영이 되시다 (아오리스트적 기술, '되신다' 보다는 '되시다'가 나을 것 같다).

그런데! 동시에 시간 안에서 주님은 '되시다' '이시다'가 아니라 '되심'을 말씀하는데, 이는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있었고, 또한 그것으로 이 '되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 본래가 살리고 계시는 영이시지만 ( 6:63), 하나님의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안에서 '되심'이 필요했는데, 먼저 '성육신'하심이고 또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해서이다. 이러한 과정이 없으면 주님은 살려주는 영이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취하고 먹고 누릴 수 있는 생명의 양식이 될 수 없다. 죄악된 사람으로서 거룩하고 영원하신 생명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그의 죽으심에 연합해서 함께 죽고, 또한 그의 부활하심에 연합해서 함께 일어난 사람들은 그 살려주는 영이신 주님을 생명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다( 6:29).

주님은 생명의 빵 되신다. 그래서 성찬을 행하고 말씀이신 주님을 우리의 생명으로 취함으로 먹는다. 그럼으로 믿는 이들은 이 생명을 계속해서 얻고, 그 생명으로 변화되며, 그 생명으로 영광 돌리는 삶을 살고, 결국에는 성화, 즉 주님과 같이 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 앞에 드릴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 자신을 드린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별 가치가 없음을 인정합니다. 다만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위해 다시 사셨으며,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취할 수 있도록 살려주는 영 되심을 봅니다. 이 믿음을 우리 안에 더욱 확인시키소서. 지금도 나를 살리고 계시는 주님을 누림으로 주께 영광돌리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