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장에는 주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셨다 (1-2).  그런데 오늘 말씀은 (12 제자 외에) 따로 70을 세우셔서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셨다 (1).  그런데 여기에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다’는 언급은 없다.  하지만 이후 17절에는 12제자가 경험했던 동일한 능력을 70인 역시 체험하고 고백한다.  그들도 ‘예수의 이름 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17).  주께서 보내심은 그 이름 안에서 보내심이고, 그 이름 안은 이미 주님의 인격과 생명과 능력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더우기 ‘친히 가시려는’ 곳으로 보내신 것은 이미 70인에게 주님과 동등한 권위가 주어진 것을 보여준다.

 

많은 때 ‘능력 주소서’라고 기도하는데, 나에게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능력이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성경을 찾아보면 능력 달라는 기도를 한 예를 찾아 보기 힘들다.  성령의 은사 중 하나가 ‘능력 행함 (고전 12:10)’이기는 하지만 그 능력 행함도 구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한 성령이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는 것이다 (고전 12:11).  능력에 대해서는 이미 믿을 때 주신 것으로 성경은 말한다 ( 6:10, 4:13, 딤후 1:7) 왜냐하면 주님 자신이 능력이시고, 또한 복음이 우리에게 이미 능력이다 ( 1:16).  그래서 주님은 ‘능력을 위해 기도하라’ 하지 않으시고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2)’고 명하신다.  일꾼은 능력을 받는다.

 

3절은 ‘갈찌어다’라고 명하시는데, 영어로 하자면 Go 이지만, 마태복음 28:19절의 Go와는 다른 단어다.  모두 ‘보내심’을 말씀하는데 왜 다른 단어를 썼을까?  마태복음의 go는 ‘포류오’라는 단어로 ‘가다, 떠나다, 갈아타다, 이미 가던 길을 계속 가다’ 등의 의미이지만, 3절의 go는 ‘후파고’로 ‘후포’와 ‘아고’의 합성어인데 ‘밑으로 이끌다, 밑으로 보내다, 떠나다’ 등의 의미이다.  그런데 ‘아고’는 ‘이끌다, 동행함으로 이끌다’ 등의 의미로 ‘함께 함’을 뜻한다.  이 말씀 후에 바로 ‘보아라 내가 너희를 어린 양들로서 이리들 가운데로 보낸다’ 라고 말씀한다.  70인들에게는 아무 능력도 없지만, 주님께서 그들을 보내실 때 그들은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끄심으로 함께 가는 것이다.  원래 주님이 가시려고 했던 곳들을 그들이 가기 때문이다.

 

70인의 갖춰야할 태도는 지난 열두 제자를 보내셨을 때와 비슷한데 재미있는 것은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함을 말씀한다 (7).  우리가 받고 누리는 것은 다 ‘은혜’인데 주님은 왜 ‘일꾼, , 마땅함’을 말씀하셨을까?  우선 기본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필요한 ‘먹고 마시는’ 즉 생존을 위한 필요는 당연함을 말씀한다.  그런데 이 ‘마땅하다’는 말은 ‘악시오스’로 ‘같은 무게가 있다, 합당하다, 어떠한 것에 상응하다, (좋거나 나쁜 것에 대해) 상응한 대가가 따르다’ 등의 뜻이다.  5: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의 ‘합당’과 같은 단어다.  더 넘치거나 모자름이 없이 상응함을 의미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악시오스’ 역시 어원이 ‘아고’로 추정된다는 것인데,  70인이 주님께 보내심을 받아 사역할 때 누리는 기본적인 사항은 ‘아고’가 있기 때문에 ‘악시오스’가 있다.  다시 말해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그들의 누리는 ‘마땅함’이 당위성을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8-9절은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고 명하신다.  자신들이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거나 병자들을 고치는 것으로 대가를 챙기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렇게 함으로 이 모든 마땅히 누리는 것이 은혜가 되고 은혜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비슷한 내용을 말씀하는 마태복음 10장에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8)’라는 명령도 하신다.

 

주님, 분명 열두 제자가 있고 또 따로 세우신 70이 있음을 봅니다.  내가 그 12이나 70 가운데 속하지 않았을지라도 신앙의 삶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임을 압니다.  주께서 우리를 보내실 때 양들을 이리 가운데 보내시는 것 같을지라도 주님은 함께 하심을 배웁니다.  이 시간 위험한 상황 중에서도 신실히 복음을 전하며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도 포기하고 자원해서 낮아지는 삶을 살고 있는 주의 종들을 기억하시고 주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을 항상 나타내소서.  우리의 삶이 주님 앞에 은혜로 경험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