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절은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기록한다.  만일 이 구절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다면 더 이상 주기도문의 ‘당신의 왕국이 임하시며’ 라고 기도할 필요는 없을까?  그런데 이 20절은 주님을 조롱하고 비판한 사람들 ‘너희’에게 하신 말씀이다.  우리말 번역은 2절도 20절도 모두 ‘임하다’라고 번역했지만 원어는 두 단어가 다르다.  20절은 ‘오다, 도달하다’이며 ‘너희에게’도 ‘너희 위에’로 되어 있다.  하나님의 왕국은 주님의 능력 행하심으로 이미 그들 위에 도달했지만, 그들은 부인하며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온전히 임재할 하나님의 왕국은 미래의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 세대’라고 표현되는데, 악하여 표적을 구하는 세대다.  더우기 다이몬이 나왔다가 후에 다른 다이몬 일곱을 추가로 데리고 들어간 사람 처럼 소망 없는 세대임을 말씀한다.  수학적으로는 1+7이라 총 여덟의 다이몬이 들어간 것이 되고 원어로도 복수로 되어있지만 숫적인 것을 떠나 성령은 없고 악령으로만 사로잡힌 세대를 보여주신다.

 

이러한 세대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 즉 죽으심과 부활하심인데, 이러한 소망없는 세대에 대한 해결책은 개선이나 보수가 아니라 ‘사망선고’이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임을 보여주신다.  이러한 해결책을 보는 것이 우리에게 빛이 되고, 아무리 보는 눈이 있어도 이러한 것을 볼 수 없다면 빛이라 생각되어도 사실은 어두움이다 (35).  어떻게 빛이 어두움이 될 수 있을까?  가짜 빛이기 때문이다.  서울 대학의 모토가 ‘진리는 나의 빛, 베리타스 룩스 메아’이고 하버드 대학도 원래의 모토는 ‘Christo et Ecclesiae ("그리스도와 교회")’ 였지만 나중에는 ‘베리타스, 진리’로 바뀌었는데, 그리스도와 교회를 떠나면 아무리 진리를 추구해도 그 빛은 가짜가 되고 속에서는 어두움이 될 수 밖에 없다.  주께서 내 안에 더 비추시기를!!

 

주님,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옵소서.  우리 안에 빛 비추셔서 진리를 보게 하시고 이러한 것이 가능하도록 주님의 죽으시고 부활하심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