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절은 ‘그런데 그가(예수님) 안식일들 (복수) 안에 회당들 중에 하나 안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라고 시작한다. 아마도 안식일 마다 같은 회당에서 계속 가르치셨나보다. 거기 여자가 있었는데, ‘있다’의 원어 시제는 ‘있어 왔다’로 하루만 있던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있었음을 말한다. 이 여자는 개정역 번역처럼 ‘귀신’ 들린 것은 아니고, ‘연약함의 영’을 소유하고 있었다. 즉 심약했던 여자다. 심리학을 언급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심리학을 인용하면 좀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상태의 여자같은데, 문제의 본질은 신체적인 것이 아닌 ‘연약함의 영’이 문제였다. 요즘 말로 한다면 마음이 약함으로 인해 몸까지 고통을 받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연약함에 열 여덟 해 동안을 시달려 왔는데, 원어로 18은 '10 그리고 8'이다. 10은 완전수이고 8은 또 다른 완전수 7에 하나를 더한 것이다. 보통은 40을 고난의 숫자로 여기지만, 이 여자는 이러한 연약함을 10 그리고 7에 하나 더한 해 동안 끌고 온 가련한 사람이었다. 더욱 가련한 것은 열 여덟 해 동안 그랬는지, 아니면 서서히 그러다가 이제 완전히 몸이 굳었는지 모르겠지만, 몸이 굽어져서 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상상해 보면 아마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래서 엉덩이와 다리가 땅에 닿은 상태에서 윗 몸은 그 다리 위로 붙은 매우 불편한 자세로 기어(?) 다녀야 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왜 이런 상태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연약함의 영’이었는데, 아마도 자신의 죄책감, 갈등, 분노, 그리고 그 외의 악하고 약한 여러 요인들이 그녀를 사로잡았고, 결국 몸을 펼 수 없는 상태, 더우기 그런 모습이라야 마음이 편한 상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바로 이 열 여덟 되는 해가 그녀의 희년이 되었다. 안식일 후 첫날이 부활의 날이 되었던 것 처럼, 10년, 7년, 그리고 다음 해인 18년째 되는 해에 주님께서 그녀를 보셨다 (인식하셨다). 그리고 부르시며 (외치며) 말씀하신다. ‘여자여! 너의 약함에서 놓임을 받았다! (완료시제)’
이 여자는 그 연약하고 불편한 몸임에도 안식일마다 회당에 있었고 주님은 그것을 인식하셨다. 인간의 노력이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는 없고, 은혜는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기에 은혜이지만, 주님은 힘든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매주 안식일마다 주님의 가르치심을 들었던 그녀를 주목하셨고, 그녀에게 외쳐 부르시고 놓임을 선포하신다. 그리고 그녀에게 손을 대시자 즉시 그 여자의 몸은 펴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런데 회당장이 이 일로 딴지를 건다. 그는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에 대해 분을 내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종교인의 모습이다. 오히려 몸이 굽었던 여자보다 이 사람은 그 마음과 영이 굽은 사람이다. 그는 레위기 23:3절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의 구절을 인용하여 주님을 대적하는데, 주님께서는 왜 자꾸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일부러 하시는가? 그것은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이다.
주님은 15절에 ‘외식하는 자여 (단수),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고 물으시며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고 답하신다. ‘사탄’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대적자’라는 의미인데, 주님은 회당장의 대적함을 빗대어 말씀하시며 회당장 역시 사탄에 매인 인생임을 보여주신다. 안식일을 지키지만 안식은 없는 종교인 회당장의 모습은 그 몸과 마음이 놓임 받은 여자와 대조가 된다.
주님, 질서나 안전 혹은 편안함을 위해 만들어 놓은 여러 규정들이 오히려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묶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것들이 정말 주님에게서 온 것인지 돌아보게 하소서. 말씀의 울타리는 나를 지키지만 주님 없는 여러 규칙들은 우리를 속박합니다. 이제까지 살면서 나의 마음과 생각을 얽어매고 부정적으로 만들었던 많은 것들에서 이제 해방하소서. 주께서 외쳐 부르시고 선포하소서. 나의 머리 드시는 분은 은혜로 체험되는 주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