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 이라는 말은 ‘무엇을 배우는 길에 처음 들어섬, 또는 그 길’ 이라고 국어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예를 들어 ‘바둑입문’이라는 책은 바둑을 모르는 초보자에게 어떻게 바둑을 두는가에 대해 기초부터 설명한다.  믿음 생활 역시 그에 대한 ‘입문’이 있는데, 오늘 말씀은 이 ‘입문’에 대해 기록한다.  예수님께서 그 자신을 ‘양의 문 ( 10:7)’ 즉 ‘문’이심을 말씀하는데, 오늘은 ‘좁은 문’에 대해 말씀하신다.  예수를 믿어도 ‘좁은 문’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할 때가 많지만 사실 주님을 믿는 것 자체가 이미 좁은 문에 들어가는 것이다. 

 

요한복음에는 주님을 믿는 문제가 모두 주님 ‘안으로, eis’로 되어 있다.  즉 주님을 ‘그냥’ 믿는 것은 나와 그리스도의 상호 관계 보다는 일방적인 성격을 띠지만 (물론 시작은 될 수 있다), ‘주님 안으로’ 믿을 때 주님과 나 사이에는 ‘내가 주안에 주가 내 안에’의 상호 관계가 비로소 시작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좁은 문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믿는 것이 제대로 경험되지 못할 때가 많은데, 우리의 삶 속에서 자꾸 넓어 보이는 문들이 눈에 띠고 그것들을 추구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자체가 예수님의 이름 안으로 즉 그 분의 생명과 성품과 인격 안으로 믿는 것임을 알게 된다면 그러한 추구는 그친다.  먼저 주님의 왕국과 그 분의 의를 구하기 때문이다. 

 

23절은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라고 묻는다.  구원 받을 확률은 얼마나 되며, 혹시 내가 그 확률에 들 수 있을지 묻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그 사람 만이 아니라 함께 한 ‘그들에게’ 대답하시는데,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한다.  ‘좁은 문’이 있고 ‘힘씀’이 있다.  ‘힘쓰라’의 원어는 ‘아고니제스떼’인데, 영어 agonize의 어원이 된다.  즉 ‘고뇌하다, 필사적으로 노력하다, 극도의 통증을 느끼다, 분투하다’ 등의 뜻이다.  이 동사의 시제는 현재형이며 형태는 이태동사인데,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한 번 문을 통과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현재 진행형이며 동시에 그 분투는 나의 자발적인 노력과 더불어 외부의 영향도 포함한다.

 

그런데 24절 후반부에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말씀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좁은 문에 들어가기를 구하는데,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그 이유는 단지 ‘구하’기만 했지 현실에서 필사적으로 고뇌하고 분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사적인 고뇌나 분투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좋은 땅’의 비유에서 보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 ( 4:19)’에 의한 것이겠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 향락을 다 즐긴다면 좁은 문에 들어가기를 agonize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은 지옥신세 면하고 천당가는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평생을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함에 이르는 것이다 ( 4:13).  바로 이러한 이유로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게 된다 (30).

 

좁은 문이신 그리스도는 그 가시는 길 역시 좁은 길인데 ( 7:14), 그래서 세상에서 어떠한 유혹이나 시험이나 위협이 와도 그 가는 길을 계속한다.  헤롯은 주님을 죽이려고 했지만, 주님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고 선포하신다 (32).  33절에는 ‘(아무튼,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고 말씀한다.  오늘 내일 모레는 계속되는 나날들이고 주님은 결말이 죽는 것을 아심에도 그 길을 가시는데, 32절의 ‘제삼일’은 ‘모레’가 아니라 주님의 죽고 부활하시는 날이다.  주님의 부활이 이러한 좁은 문과 좁은 길을 매일 사신 결과임을 볼 때,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믿는 이들 역시 하루 하루 우리 받은 소명의 길을 감으로 제삼일에 부활을 경험할 것이다.

 

주님, 좁은 문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계속해서 고뇌하며 분투함으로 힘써야 하는 문제임을 배웁니다.  주님 약속하신 평안을 누림과 동시에 주의 어떠하심을 닮아가기 위해 주를 힘껏 의지하도록 인도하소서.  주님 안에서 나의 노력과 분투가 있고, 주의 성령의 인도하심과 상황을 안배하심이 있음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