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도 또 안식일인데 주님은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었다. 이러한 엿보임을 당하셔도 기꺼이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함께 식사하러 가신다.  그리고 어떤  ‘수종병’ 든 사람이 등장한다.  ‘수종병’은 헬라어로 ‘휘드로피코스’인데 ‘수종’ 즉 ‘물과 종기’를 의미하는 병으로 ‘휘도르 ()’과 ‘오프타노마이 (눈으로 보다)’의 합성어이다.  몸에 물이 차서 붓는 병이다.  이 병은 후에 ‘우물에 빠진’ 짐승과 비교되는데, 그냥 웅덩이나 구덩이가 아니라 ‘우물’ 즉 물이 찬 구덩이다.  짐승이 우물에 빠지면 물 때문에 몸이 붓고 무거워 지는 것 처럼, 이 사람 역시 건조한 날씨에도 자신은 물이 차서 마치 우물에 갇혀 있는 듯한 고통을 받는 사람이다.  주님은 그를 고치신다.

 

재미있는 것은  3절이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라고 기록한 것인데, 앞 구절에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이 질문했다는 내용이 없지만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즉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여러 대화가 주님과 그들 사이에 오고 갔음을 알 수 있다.  3절에는 ‘대답하다, 아포크리떼이스’ ‘말하다, 에이펜’ ‘말하다, ㄹ레곤’ 등 ‘말하다’를 의미하는 단어가 세개나 쓰였다.  5절 역시 원어에는 ‘대답하여 말씀하셨다’로 되어 있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매우 혹독하게 대하셨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아예 상종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함께 식사하셨고, 말씀하셨고, 그들에게 대답, 즉 대화를 시도하셨다.  특히 안식일에 대해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이 안식일의 문제는 십계명 중 하나로 매우 중요한 것이고, 이스라엘이 망하고 주위 강대국의 침략 속에서 그래도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던 바리새인들이 그들 나름대로 계속 신실하게 수호하려던 문제였다.  또 구약 여러 곳에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그 백성 중에 끊어질 것을 기록한다.  이렇게 중요한 안식일의 문제를 와해하려는 듯 보이는 주님의 행동은 그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하지만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주님께서 ‘그 아들이나 (원어에는 나귀)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5)’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한다.

 

논리적으로 또 현실적으로는 맞는 말씀이지만, 그들이 대답하지 못한 이유는 주님의 말씀에 동의했기 때문이 아니라 속으로는 그 비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고, 이러한 해석을 하시는 주님은 매우 진보적으로 비춰졌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은 당시 많은 것에서 소위 ‘진보주의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주님은 진보주의를 위한 진보 혹은 정치적 진보가 아니라 원래 하나님의 뜻 즉 진정한 보수를 위한 진보였다.  그래서 안식일을 ‘법’으로 지키는 문제보다는 그 의미를 더 강조하셨고, ‘이혼’ 문제에 대해서도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는 것을 허락했지만 그 이유는 ‘너희의 완악함 때문에’ 즉 여자를 위한 것이었으며, 더욱이 ‘본래는 그렇지 아니 ( 19:8)’함을 강조하신다.

 

내일은 헌재 선고가 있는 날이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박대통령을 좋아하지도 않고 그 외 다른 이들은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차피 세상사에 희망을 두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보수와 진보 진영이 갈리는 것을 보는데, 그들 가운데에 참된 진보와 진정한 보수의 모습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더우기 종교적 진보와 보수, 정치적 보수와 진보가 섞일 때면 더 복잡해진다.  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본래’를 염두에 둔다면 그 가운데 무엇을 택할지 알 수 있다.  수종병은 필요 이상의 물이 몸에 차서 마치 우물에 빠진 것 같은 불편함과 속박을 느끼게 하는 병이다.  주님은 ‘본래’의 것을 말씀하며 보수나 진보가 아니라 참 진리를 보이시고 우리를 구원하신다.

 

안식일의 ‘본래’ 의미는 ‘완성’이다.  하지만 인간의 죄로 인해 타락하고 고통받는 상태에서 안식은 불가능하고 완성 또한 무너졌다.  그래서 주님은 진정한 본래의 안식을 위해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 5:17)’고 말씀한다.  주님은 우리 가운데 지금도 일하신다.

 

주님, 주님께서는 종교적 진보로 보였을 수 있지만 사실은 온전한 참 진리로 오셨음을 압니다.  우리의 기준으로 주님을 판단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친히 가르쳐 주시고 오직 주님 안에서 하나되게 하소서.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기소서.  지금도 주님 앞에 신실하게 무릎꿇고 기도하는 주의 종들을 보시고, 믿는 이들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하소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주님입니다.  정세가 편하든지 어렵든지 이 모든 상황을 주님 추구하는 기회로 삼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