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명성 교회 상황 때문에 다시 교회 세습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교회 세습이라는 말 자체가 황당한 말이지만, 이러한 일들이 몇몇 대형 교회 뿐만이 아니라 여러 중형 교회들에서도 소리 소문없이 자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여러 가지 변명들이 들리지만 결국은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 등 주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추구하는 것이다. 주님의 교회를 자신의 소유로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결론적으로 그러한 리더들은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를 강도의 굴혈로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일을 자행하는 목회자들은 카리스마틱하고 축복권과 저주권을 가진 것 처럼 보이며 또 여러 면에서 지혜로운 것 처럼 보인다. 오늘 말씀은 ‘불충한 청지기’의 비유인데, 정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내용이 이상한 것 같다. 부자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는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주인에게 들리자 주인은 그를 해고한다. ‘낭비’라는 말은 ‘허비’라는 말과는 다른 말이다. 마 26:7-8의 어느 여인이 향유 한 옥합을 주님의 머리에 부을 때 제자들은 ‘왜 허비하느냐’라고 분개했는데, 이 말은 ‘멸망, 아폴로미아’에서 유래된 ‘아폴레이아’라는 말이지만, 여기의 ‘낭비’는 ‘헤치다, 흩어놓다’를 의미한다. '허비'라는 말 대신에 이 단어가 사용된 이유를 안다면 ‘물질’ 혹은 ‘돈’의 정체를 알 수 있는데, 돈이나 물질은 사라지거나 낭비된다고 생각될 때가 있지만 많은 경우 단지 위치가 바뀌는 것이다. 부자에게 있어 그의 소유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로 위치가 바뀜으로 은혜가 되는 것이다.
아무튼 이 청지기는 현실을 보며 한탄하다가 꾀를 내는데, 주인에게는 손해가 되고 사기치는 것이지만 빚진 자들을 탕감해 준다. 그런데 이런 ‘불의한 일’을 한 청지기에 대해 주인은 칭찬한다. 물론 그의 불의함을 칭찬한 것이 아니라 그의 처세를 칭찬한 것이다. ‘그 놈 참 똑똑하군. 앞길은 알아서 준비하는군’ 이라는 의미이다. ‘지혜 있게’라는 말은 지난 12장의 ‘지혜로운 청지기’에서도 쓰인 단어인데, 보통 '지혜롭다'는 '소피아'라는 말을 쓰지만 '쁘로니모스'라는 단어를 썼는데, '지혜롭다, 현명하다'의 의미이고 그 어원은 '쁘린'으로 '생각' 혹은 '심장의 판막'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단어는 ‘기질 disposition’이라는 의미도 있다. 즉 전혀 영적으로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현명함이다. 이에 대해 주인은 그를 칭찬했고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고 말씀한다.
번역이 좀 잘못되었는데, ‘시대’와 ‘세대’가 바뀌었다. ‘이 시대’ 즉 현재 하나님 왕국이 온전히 임하지 않은 이 때에는 세상 사람들이 빛의 아들들보다 더 '쁘로니모스'하다. 그래서 이 ‘지혜’는 주님 기뻐하시는 지혜가 아니라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현실 속에서 꾀를 내고 주님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 때 필요한 지혜를 말씀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빛의 아들들은 이러한 것에 무지하다. 때가 악하며, 이러한 지혜 역시 불의하기 때문이다. 빛의 아들들은 재물에 대해 손해보고 사는 이들이다.
9절 말씀이 좀 이상한데 마치 사기치며 재물을 모으는 사람들과 사귀면 그들이 영생을 줄 것이라는 말씀처럼 들린다. 그런데 원어를 보면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있다 불의의 맘몬 밖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러면 너희가 실패할 (아오리스트) 때 마다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장막안으로 받아들이다 (아오리스트)’ 정도로 되어 있다. 이 말씀은 불의한 재물이 많은 부자들이 천국을 간다거나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들이 ‘불의의 맘몬’에 대한 충성의 본이 되며, 그러한 본은 영원한 처소와 관계가 있다는 말씀이다. 즉 10-13절로 이어진다.
교인들 중에 돈 문제에 대해 명확하지 않은 이들이 꽤 많은데 이러한 이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정말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돈 문제는 영적인 문제임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의 돈을 쓰는 것도 물론 영적인 문제이고 제대로 써야하겠지만, 특히 교회 재정을 쓰는 것에 대한 심각성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교회 재정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이들은 저주받은 이들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재정을 운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고, 모든 재정에 대한 감사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은혜로 해석할 문제가 아니다.)
주님께서는 이 시대의 아들들이 ‘불의한 재물에 충성함’을 말씀하시고, 현실에서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되는 ‘물질’이 사실은 ‘지극히 작은 것 (10절)’인데, 이러한 작은 것에 충성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참된 것 (11절)’을 맡기지 않으실 것을 말씀한다. 이 ‘참된 것’은 요 1:14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의 ‘진리, 알레떼이아’의 형용사이다. 진리를 안다면서 혹은 주님을 안다면서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지 못하면 거짓말 하는 것이다. 그 안에 진리가 없다. 주님께서는 결론적으로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한다. 마음이 재물을 향할 때, 재물은 우상이 되고 하나님은 없다.
주님, 복음을 들을 때, 진리를 깨달을 때, 주님과 물질 사이에 택함이 요구됨을 봅니다. 현실에서는 물질에 마음과 손이 갑니다. 하지만 진정한 현실인 ‘진리’ 안에서는 주님만이 모든 것 되심을 압니다. 물질로 채우심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거기에 소망을 두지 말게 하시고, 영적인 것에 부요하기 위해 재물을 ‘흩는’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게 하소서. 나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돈을 의롭게 사용함을 통해 증명하게 하소서. 교회는 주님의 것임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