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나라의 세 가지 구성 요소는 ‘주권, 국민, 영토’로 이해한다.  그런데 12절과 15절에 ‘왕위’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로 ‘왕국’이다.  성경에서는 ‘왕국’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 그 주권만이 우선적으로 부각된다.  즉 주권만 있으면 백성이나 영토는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주권은 하늘에서 온다.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드디어 정세를 뒤엎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는 아직 이른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 오늘 열 므나의 비유를 드시는데, 열 명의 노예들이 등장하고, 주의 왕 되심을 반대하는 ‘백성’들이 나온다.  숫자적으로는 열 명 보다는 ‘백성들’이 훨씬 많겠지만 나중에는 그의 왕 되심을 반대하는 이유로 모두 죽임을 당한다.  이 백성들은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그의 백성들이다 ( 1:11).  그리고 이방에서 백성들을 대신 채우신다.

 

12절에는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라고 말씀하는데, 주님께서는 다윗의 자손으로서 원래부터 왕이시지만, 처음 오셨을 때는 그 왕권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귀인’으로 말씀하시지만, 후에 다시 오실 때에는 이 땅 모든 나라들에 대해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실 진정한 왕으로 오신다.  그래서 충성된 종들에게 그들이 남긴대로 ‘열 고을’ 혹은 ‘다섯 고을’ 즉 지금 말로 하면 ‘10개 도시’ 혹은 ‘5개 도시’의 왕되게 하신다.

 

열 므나의 비유와 달란트 비유에는 차이가 있는데, 달란트 비유에서는 그 맡겨진 액수가 므나에 비하면 어마어마하다.  즉 이 달란트는 사람의 어떤 것이 아니라 금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인데, 맡겨질 때 ‘각각 그 재능대로 ( 25:15)’ 주셨다.  그래서 ‘탤런트’를 ‘재능’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 달란트는 인간의 천연적 재능이 아니라,  재능과 더불어 살아가며 습득한 능력이나 지식을 바탕으로 맡겨진 하나님의 거룩하신 어떠함이다.  달란트는 맡겨진 것도 다섯, , 하나 등으로 다르지만, 므나는 모두 동일하게 하나씩 받았다.

 

달란트나 므나나 모두 ‘장사하여’ 이익을 남기는데, 장사 혹은 비지니스를 소위 ‘영적’인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속된 것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삶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것이 장사이고 비지니스이다.  장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프라그마투오마이’로 ‘무엇인가에 시간을 들이다, 비지니스를 하다’ 등의 의미인데, 영어 ‘pragmatism, 실용주의’의 어원으로 생각된다.  즉 삶 속에서 맞닥뜨리고 부대끼는 모든 가운데 그 받은 한 므나를 늘리는 것이다.

 

달란트는 받은 만큼 즉 100%를 남기지만, 므나는 각자 한 므나에서 열 (1000%) 혹은 다섯 (500%)으로 늘렸고, 그 중에는 아예 장사를 하지 않고 그냥 받은 것 그대로를 내보이는 ‘악한 노예’도 있다.  시간과 자본은 동일했지만 각자 남긴 것이 다르고 그 중에는 아예 장사하지 않은 이도 있음을 본다.  전에는 몰랐던 부분을 아침에 묵상하며 알게 되었는데, 이 열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로 모든 주의 종들을 대표한다.  그런데 아무리 주의 노예들이 많다고 해도 백성들의 수를 당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 백성들은 주를 대적한 이들이다.  이 열 노예들이 그러한 상황에서 받았을 고통이 어렴풋 느껴진다.  백성들 가운데 장사를 하며 살아남아야 했고, 아마도 백성들에게 돌아올 ‘귀인의 종'이라는 비난과 천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 고통 가운데 이들은 열 므나 혹은 다섯 므나를 남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단번에 받은 죄사함과 주님의 생명, 그리고 믿을 때 받은 ‘같은 성령 (고전 12:9)’ 그리고 그리스도의 내주하심 ( 8:10, 2:20) 등은 우리에게 주어진 동일한 한 므나이다.  즉 므나는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이 우리 안에 '체험'된 것이다.  이러한 한 므나를 우리의 삶 속에서 힘껏 장사할 때 열 명 혹은 다섯 명에게 나누어지고 그들은 주님 오실 때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 그리고 ‘영광’이 된다 (살전 2:19-20).

 

주님, 그 날 우리에게 은혜로 체험되신 주님 앞에 내놓을 것이 있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금방 갈 것이지만, 이 하루 주님을 누리며 그 누림을 나누며 내 삶 속에서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확장되심으로 남겨지는 므나가 있게 하소서.  주님의 귀한 종들에게 힘되시고 능력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