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심판이 있을 것을 아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소망을 발견하는 것이다. 생명의 삶 해설에서는 30절 ‘여름’을 히브리어 ‘카이츠’와 ‘끝’을 의미하는 ‘케츠’를 비교한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헬라어로 여름 ‘떼로스’는 뒤 31절의 ‘하나님의 왕국, 바실레이아 투 떼우’ 즉 ‘떼우’와 비슷한 발음으로 이어지는 느낌이다. 둘 모두 동사 ‘알다, 기노스케테’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름은 뜨겁고, 또 ‘끝’일 수 있지만, 그 후에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왕국이 온전히 도래한다.
34절 ‘덫과 같이 임’할 수 있는 그 날이지만 (원어에는 ‘덫’이라는 말은 없고 ‘갑자기 그 날이 너희 위에 서게 되다’로 되어 있다) 28절은 우리의 속량 (혹은 구속, 용서)이 가까이 왔음을 말씀한다. 주님께서 읽는 자들에게 계속 깨어 있고 조심하고 주의하라고 (모두 현재 진행형 동사) 말씀하시는 것은 경고를 위한 경고가 아니라, 그 날이 우리에게는 심판의 날이 아니라 소망의 날 되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가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 (36절)’기를 원하신다.
36절 ‘깨어있다’의 헬라어를 생명의 삶에는 ‘그레고레오’라고 설명했는데, 사실은 ‘아그뤂네오’이다. 성경 여러 곳에서 ‘깨어있다’를 ‘그레고레오’로 썼기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이 구절에는 ‘아그뤂네오’로 되어 있다. 물론 둘의 의미는 거의 비슷하다. ‘그레고레오’는 어원이 ‘잠에서 깨어나다’의 의미인 ‘에게이로’로서, ‘보다, 주의하다’의 뜻인데, ‘아그뤂네오’는 ‘아니다’를 뜻하는 접두사 ‘아’와 ‘자다’를 의미하는 ‘훞노스, (최면의 hypnosis와 관련)’의 합성어이다. 즉 ‘잠을 자지 않다’의 의미이다. 잠을 자다가 정신 차리고 깨어날 때가 있고, 아예 잠을 자면 안되는 때가 있다. 주의 재림이 임박했을 때는 아예 잠을 자지 말아야 한다.
잠을 자지 않는 목적은 단지 그냥 깨어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카이로스 안에서 간구하’기 위해서다. 또 간구하는 것은 소극적인 모습으로는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는 것에 대한 것이지만, 적극적인 면에서는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 있을 자격이 주어짐’에 대해서다. 그렇게 되면, 이러한 기도는 또 다시 우리를 깨어있게 한다 (엡 6:18, 골 4:2).
주님, 이러한 말씀이 현실을 도피하거나 망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주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그 날이 소망의 날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안에 비추소서. 오늘 하루 깨어 기도하는 하루로 주께 드리며, 현실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살 수 있게 소망으로 충만케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