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성찬 후에 제자들은 배가 불렀는지 술에 취했는지 또 다시 서로 누가 높은가 다툼이 일어났다.  주님께서 ‘원하고 원했다’ 또 ‘결코 절대로’ 라고 속내를 보이셨는데도 제자들은 자신들이 앞으로 차지할 자리에만 관심이 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화를 내시거나 꾸짖거나 하지 않으신다.  그들은 ‘제자들’, 배우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가르치신다.

 

25절에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는다’고 말씀하는데, 임금들은 ‘주인들’이 되고 집권자 (영광과 관계있음)는 은인이라 칭함 받는, 힘과 영광과 칭송받는 자리이지만, 제자들이 추구해야할 것은 그와는 반대임을 강조하신다.  그래서 26절은 ‘너희는 그렇지 않고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 같이 (되어라) 그리고 이끌고 있는 이는 섬기고 있는 이 같이 되어라’ 라고 말씀한다.  즉 여기의 동사는 ‘되어라’인데, 제자들은 아직 이 ‘되어라’가 되지 못했다. 

 

반면에 주님은 이 ‘됨’을 이루셨는데, ‘주와 선생되어’ 섬김을 받으실 수 있었지만, 문맥으로 보아 제자들의 먹을 것을 챙겨 주신 것 같다.  마지막 만찬 ‘그리고 그리던 또 원하고 원하셨’던 그 유월절 만찬에 친히 제자들을 섬기셨다.  27절은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고 하는데, 원어는 ‘나는 그러나 이다 너희 안에 섬기는 자’로 되어 있다.  즉 여기에도 ‘에고 에이미’ 즉 ‘나는 ~이다’라고 말씀한다.  ‘생명의 떡’이시고 ‘세상의 빛’이시고 ‘참 포도나무’시고 등등 여러 ‘에고 에이미’가 있었지만 오늘 말씀 에고 에이미는 ‘섬기는 자’이시다. 

 

‘에고 에이미’라고 말씀하신 후, 28절에는 ‘너희들은 ~이다’ 라고 하시는데, 주님은 섬기는 자 이시고 제자들은 주님의 시험들 안에 계속 거해온 이들이다.  이러한 거함도 주님의 은혜이지만, 이를 통해 주님은 ‘너희로 내 왕국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신다.

 

흥미로운 것은 29절에 ‘맡겨’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내 아버지께서 왕국을 내게 맡기시’고 그에 따라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왕국을 ‘맡기고 계신다 (현재 진행형).  그런데 이 ‘맡기다’는 말은 ‘디아티뚜미’로서 어제 말씀 ‘언약, 디아떼케’의 어원이다.  이 ‘왕국을 맡기’는 문제는 그냥 ‘주는’ 문제가 아니라 ‘언약’에 관계된 것이다.  그래서 어제 ‘새 언약’도 이 왕국과 관련되어 있다.  13:46에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해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산 어떤 이 처럼,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언약으로 맡기신 왕국을 위해 당신의 피로 사셔서 우리에게 언약으로 맡기고 계신다.

 

다시 주목할 것은 이 ‘하나님 왕국’이 언약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막을 수도 허물 수도 없다.  하나님 없이, 거듭남 없이, 자기 부인 없어, 성령님 없이 유토피아를 세우려던 시도인 공산주의는 실패하고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하나님 왕국은 주님 오신 후, 그리고 영원히 언약 안에 새롭다. 

 

주님은 베드로가 실패하고 주님을 부인할 것, 그리고 회복할 것을 모두 미리 아셨다.  그럼에도 기도하신다.  그리고 그 기도는 베드로의 믿음을 위해서이다.  우리 역시 서로의 믿음을 위해 주님께 아뢰야 한다.  주님은 ‘믿음의 주 the author and finisher of our faith’시기 때문이다 ( 12:2).

 

35-38절에는 이상한 내용이 나온다.  누가 복음에만 나오는 내용 같은데, 이제까지는 필요 없었지만 ‘이제는’ 준비하라고 하시고 특히 ‘검’도 겉옷을 팔아 사라고 말씀한다.  이 준비하고 사는 기간은 언제까지 일까?  ‘이제는’ 이라는 단어를 보면 바로 주님이 잡혀 죽으시는 그 짧은 기간을 의미하는 것 같다.  주님은 당신에 관한 일 때문에 제자들이 죽임 당하거나 잡히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특히 검을 준비하라는 말씀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무력을 사용해야한다는 말씀은 아닌 것 같다.  ‘두 자루의 검’에 대해 주님께서는 ‘족하다’ 라고 답하시는데, ‘그들이 족하다’ 하지 않으시고 ‘그것이 족하다’ 즉 단수로 답하신다.  즉 두 자루의 숫자가 족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인데, 후에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베어버린 후 주님께서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고 말씀하시며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그리고 궁극적으로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 26)’ 라고, 즉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묵묵히 당신의 길을 가시고 모든 것을 이루신 주님을 주목합니다.  아직 배우는 우리로서는 주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기 쉽지 않고 행하기도 힘들지만 주님께서 그 길을 가셨던 것 처럼 우리도 주님을 따라야 함을 봅니다.  주님께서 언약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왕국, 주님의 몸된 교회, 믿음의 공동체로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 지기 원합니다.  주님을 더 추구하며 그 생명과 인격으로 충만함을 통해 가능함을 믿습니다.